[가정예배 365] (水) 애통해 하는 자의 복
입력 2010-07-06 17:31
찬송:‘내 주의 보혈은’ 254장(통 186)
신앙고백:사도신경
본문:“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장 4절)
말씀:성경은 여러 가지 슬픔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지만 모든 슬픔이 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울증으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사람의 울음이나, 이기적인 야망이 좌절되어서 우는 것은 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때문에 우는 울음도 그 자체가 복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울음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복이라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 있는 자의 슬픔이란 어떠한 슬픔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첫째로 심령이 가난한 데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슬픔입니다. 팔복의 첫 선언은 심령이 가난한 것 즉 하나님 앞에서의 영적으로 파산한 사실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복은 자신이 영적으로 파산한 것을 알고 그것 때문에 아파하면서 애통하게 될 때 나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마주칠 때, 또 나의 삶을 살펴볼 때, 나는 스스로 자신을 구할 능력이 전혀 없고 스스로는 전혀 소망이 없는 사람임을 발견할 때 절로 나오는 애통이며 슬픔인 것입니다.
둘째는 자기 죄 때문에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슬픔입니다. 매일 진정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살피는 자는 자신의 죄 때문에 애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품지 말아야 할 생각을 품었고, 행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했었고, 좀 더 잘 대해 주어야 할 사람들을 무시하고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발견할 때 안타까워서 애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에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죄와 이 죄로 인하여 초래된 결과들을 바라볼 때 느끼는 슬픔입니다. 세상의 도덕적 혼란과 인류의 불행과 고통이 모두 죄 때문이라는 것을 알며 이 때문에 애통해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에서 우신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죽음을 가져오고 삶을 망쳐 놓고 삶을 불행하게 만든 죄라고 하는 무섭고 추하고 더러운 것을 보셨기 때문에 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의도하신 진짜 슬픔이란 바로 생명으로 인도하는 경건한 슬픔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7장 10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직 복된 울음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울음입니다. 오직 회개로 인도하는 경건한 슬픔만이 생명을 주는 복된 슬픔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슬픔을 권면하고 귀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내 자신과 사회를 늘 돌아보며 회개로 인도할 수 있는 경건한 슬픔의 소유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기도 : 성령으로 채우사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게 하시고, 우리의 눈에 생명으로 인도하는 경건한 눈물이 마르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백동조 목사<목포사랑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