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사고 후 경찰 허락받고 귀가했으면 뺑소니 아니다”

입력 2010-07-05 18:52

운전 중 사망사고를 냈더라도 출동한 경찰의 허락을 받고 현장을 떠났다면 스스로 사고 운전자임을 밝히지 않았어도 뺑소니로 볼 수 없다는 헌재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이모씨가 광주지검 목포지청을 상대로 낸 기소유예처분취소 청구사건에서 “중대한 법리오해 및 수사미진으로 인한 자의적인 검찰권의 행사”라며 재판관 전원일치로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했다고 5일 밝혔다.

이씨는 지난해 10월 특정범죄가중처벌법(도주차량) 위반 혐의가 인정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지난해 6월 20일 오후 8시쯤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전남 영암군 13번 국도를 달리다가 편도 2차로 도로의 1차로 근처에 쓰러져 있던 박모(56·여)씨를 치어 숨지게 하고 별다른 구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혐의다.

수사기록에 따르면 이씨는 박씨를 친 뒤 50m 앞쪽에 차를 세우고 119 신고를 했다. 이씨는 무언가를 밟고 지나갔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고, 도로 위에서 모자와 신발을 봤다. 이후 차량 2대가 더 지나갔고 박씨를 또다시 친 세 번째 차량의 운전자는 박씨가 이미 숨진 상태라고 증언했다.

이씨는 출동한 경찰에게 이름과 연락처를 남겼지만 자신이 박씨를 치었다고 말하는 대신 “사고차량을 못 봤다”고 대답했다. 이씨는 경찰에게서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사고현장을 떠났다.

부검 결과 박씨의 몸에선 차가 밟고 지나간 흔적 외에는 다른 사인을 추정할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이씨가 박씨를 숨지게 하고도 현장에서 목격자처럼 행세한 뒤 사고현장을 이탈해 사고 운전자가 누구인지 확정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했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헌재는 “사고를 은폐하려고 했다기보다 사망 사고를 냈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껴 스스로 그 가능성을 애써 부정하면서 자기방어적인 심리상태에서 사고 운전자임을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씨는 헌재 결정으로 범죄 혐의가 인정되는 기소유예 상태를 벗어나게 됐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