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포회 파문] 가해자 진술만 들은 반쪽조사?
입력 2010-07-05 22:12
총리실이 5일 발표한 자체 조사 결과로 민간인 불법 사찰의 일부가 드러났다.
민간인 불법 사찰은 2008년 9월 10일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전달된 익명의 제보로 시작됐다. 조사 대상 김모씨는 국민은행의 용역 업무를 제공하던 A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국민은행과 접촉하며 A사와의 거래관계 청산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윤리지원관실 관계자는 같은 달 16일 국민은행 노무팀장을, 19일에는 국민은행 부행장을 각각 만나 김씨의 신원과 이명박 대통령 비방 내용이 담긴 블로그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압력을 느낀 국민은행은 김씨에게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 줄 것을 요구했다. 김씨는 결국 19일 사임하고 21일 일본으로 출국했다. 제보 전달 9일 만에 김씨는 회사 운영권을 잃은 것이다.
그러나 사찰은 끝나지 않았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A사로부터 법인카드 사용 내역, 업무추진비 내역 등을 임의로 제출받았다. 10월 중순에는 A사 관계자가 김씨로부터 받은 이메일을 가져와 김씨의 일본 내 연락처를 파악했다. 11월 중순 서울 동작경찰서장을 만나 김씨의 혐의 사실을 사전 설명하고 같은 달 14일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총리실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김씨가 민간인이라는 사실 확인을 소홀히 했고, A사가 민간 회사라는 부분에 대해서도 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총리실 스스로 “이번 조사는 공직윤리지원관실 관계자만의 진술을 토대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고 밝힐 만큼 부족한 점도 많았다. 총리실 조사팀이 민간인을 조사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 김씨의 의견을 청취하지 않아 ‘반쪽 조사’에 그쳤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가해자들의 일방적 변명만 들은 셈이다.
총리실은 김씨가 민간인임을 확인한 이후 경찰에 수사 의뢰한 부분이 통상적인 업무 영역에 속하는지는 이견이 있다고 밝혔다. 그래서 불법적인 수단을 통해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수사를 의뢰하는 게 통상적인 업무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자료 수집 등 사전 준비를 했다고는 하나 의혹이 불거진 12일 후 본격 조사에 착수한 것도 늑장 대응이라는 지적이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