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적 인기 랩어카운트, 증시엔 ‘毒 묻은 사과’?

입력 2010-07-05 21:41


“시장 전략을 새로 짤 틈도 없이 시장이 커졌다. 높아진 고객 기대수익률을 맞추려고 자산운용인력들이 무리수를 둘까 걱정스럽다.”(A증권사 랩 어카운트 운용 담당자)

고객 돈을 알아서 굴려주는 증권사 랩 어카운트(Wrap Account·고객맞춤형 자산관리계좌, 이하 랩) 시장에 과열 경고등이 켜졌다.

폭발적으로 랩에 유입된 투자금이 일부 증시 종목에 쏠리면서 랩이 증시 교란요인이 되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시장 과열 경고=금융감독원은 5일 투자자 보호를 위해 랩에 대한 감시·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기획검사 가능성도 언급했다. 시장 과열 국면에 흔히 나타나는 투자 쏠림, 불건전영업 행위 등의 부작용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금융감독당국이나 증권업계는 예상치 못한 랩 시장의 폭발적 성장세에 적잖이 놀란 모습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랩 계약 잔액은 지난해 3월 말 13조2804억원에서 지난 5월 말 27조6249억원으로 1년2개월 만에 108.0%(14조3445억원)나 늘어났다. B증권사 관계자는 “고객의 요구에 맞춤형으로 돈을 굴리고 연초 이후 수익률이 높다는 소문이 나면서 돈이 폭발적으로 모였다”며 “금융시장은 한번 트렌드가 생기면 금융당국이 대응할 새도 없이 급팽창한다”고 말했다.

◇소수 종목 투자로 증시 독(毒) 될라=증권사 랩 상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증권사 자체 판단으로 고객 돈을 운용하는 ‘일임형 랩’과 투자자문사의 자문을 받는 ‘자문형 랩’이다. 금융감독당국이 특히 신경쓰는 건 자문형 상품이다. 자금 유입 속도가 빠른 데다 이들 상품이 소수 주식 종목에 집중 투자돼 투자 리스크와 증시 변동성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자문형 랩 잔액은 지난해 3월 말 284억원에서 지난 5월 말 1조3640억원으로 47배나 불어났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랩 시장에도 아웃소싱 개념이 도입되면서 자문형 상품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자문형 랩은 8∼15개 주식에 집중 투자한다. 주식형 펀드 투자 종목의 4분의 1 수준이다. 주식형 펀드와 달리 동일 종목 투자한도도 없다. 고수익을 낼 수 있지만 그만큼 손실 위험이 따른다.

문제는 자문형 랩들이 일부 종목에 집중 투자하면서 투자 리스크를 더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랩 시장에선 ‘자문사 7공주’라는 말까지 떠돈다. LG화학, 하이닉스, 기아차,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테크윈, 제일모직 등 자문형 랩이 좋아하는 7개 종목을 일컫는다. 이들 종목은 올 들어서만 11∼48% 올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상승률이 가팔랐던 만큼 주가 급락 위험도 크다고 분석했다. 당장 지난 주말 이들 종목은 최고 7% 이상 급락했고, 이날 금감원의 시장 감독 강화 소식에 일제히 약세로 돌아섰다. 일임형 랩 상품들도 자산의 50% 정도를 서로 비슷한 종목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자문업계 관계자는 “시장 평균 수익만큼은 내야 하는 상황에서 투자 종목 베끼기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애널리스트는 “상반기 랩 선호 종목은 IT 자동차 등이었는데 하반기엔 경기회복 기조에 인플레나 원자재 관련주들이 부각되면 랩 투자 종목 주가가 하락하고 매도물량이 쏟아져 나와 증시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정현 기자 k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