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고상두] 軍의 주적
입력 2010-07-05 18:00
독일은 인구 8000만의 유럽대국이지만, 통일조약에서 이웃국가들의 안보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군사력을 34만명 이하로 감축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나마 현재 독일군의 병력은 25만명에 불과한데, 최근 국방장관이 예산절감 차원에서 징병제를 폐지하고 병력을 15만명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해 논란이 일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의 불똥이 군으로 튀면서, 경제논리가 군의 주적이 되고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용병제가 일반적이었다. 왕들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군사력을 유지할 재력이 없었기 때문에 전쟁이 불가피한 경우에만 용병을 사용했다.
용병대장은 수하 병사를 데리고 왕들을 찾아다니면서 계약을 따냈다. 용병은 대금지불이 지체되면 전투를 중단하고, 심한 경우에는 적국의 왕과 계약을 맺어 무기를 거꾸로 쥐기도 했다. 용병은 돈을 위해 전투를 했기 때문에 중세의 전쟁이란 한 쪽은 성을 지키고 다른 쪽은 성을 포위하여 서로 죽치면서 계약기간의 연장을 위해 싸웠다.
독일은 징병제 폐지 논란
근대국가가 상비군을 조직하게 되면서 징병제가 생겨났다. 초기에는 마을 단위로 일정 수의 장정을 차출했다. 마을에서는 불량배나 노예를 골라 보냈다. 죄수들이 감옥 대신 군을 택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시기 군대의 가장 큰 고민은 탈영이었다. 전쟁터로 가는 도중에 많은 병사가 도주했기 때문에 탈영을 총살로 다스리는 군법이 생겨났다. 해군은 군기가 더 셌다. 수병들이 선상반란을 일으키고 해적이 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에 함장은 명령 불복종을 총살로 다스리는 권한을 가졌다. 영국의 넬슨 제독은 적병보다 자신의 병사가 더 두렵다고 일기에 썼다.
프랑스는 모든 젊은이가 입대하는 국민군 제도를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프랑스 혁명이념을 반대하는 주변국의 개입을 막는 것이 국민의 의무가 되었고, 나폴레옹의 백만 대군은 유럽대륙을 휩쓸고 다녔다. 국민개병제는 냉전시대에 절정에 달했으나 이제 점차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스웨덴은 금년 7월부터 징병제를 폐지했다.
냉전 종식 이후 독일은 특히 안보적 이유 때문에 동유럽의 유럽연합 가입을 지지했고, 이제 우방국에 의해 완전히 둘러싸이게 됐다. 영토 방위의 필요성이 급감하면서, 독일군은 아프가니스탄이나 레바논 등 해외에서 군사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 독일군은 직업군인이 19만명, 국민역이 6만명이다. 징병대상자는 연간 40만명이지만 징병검사 탈락률이 높고, 대체복무자, 경찰 및 소방대원 등을 제외하면 소수의 젊은이가 입대를 하는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징병제의 존속을 주장한다.
군사주의라는 아픈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 독일국민은 징집제도를 군과 사회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로 인식한다. 병사의 부모형제는 항상 군에 관심을 갖게 되고 군에 대한 민간통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징병제 폐지에 대한 타협안으로 금년 7월부터 복무기간이 9개월에서 6개월로 단축되었다. 3개월의 훈련기간을 제외하면 불과 3개월을 근무하게 되는 국민역이 앞으로 얼마나 유지될지 의문이다.
통일 후 병역제도 생각해야
통일한국의 대안적 병역제도는 무엇인가? 군사력의 적정규모는 인구, 경제력, 안보위협, 국제기여도 등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통일 이후 주변국과의 관계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또한 안보가 자국방어에서 공동방어로 개념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국제평화를 위한 해외파병의 필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
이를 위해 스위스와 같이 직업군인으로 된 상비군과 매년 단기간의 동원훈련을 받고 유사시에 정규군이 되는 민병대로 구성된 병역제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대안은 향토예비군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길이다.
고상두 연세-SERI EU센터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