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김혜림] 보호할 가치 있는 인권인가
입력 2010-07-05 17:48
“사람 아닌 짐승을 죽였습니다.”
중풍으로 반신마비 상태인 50대 남성을 찔러 죽인 30세 여성이 재판정에서 한 최후진술이다.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3년, 치료감호를 선고받은 그녀의 이름은 김부남이다.
벌써 19년 전 일이다. 그녀는 아홉 살 때 옆집 아저씨에게 성폭행당한 후유증으로 결혼한 뒤 잠자리를 거부해 이혼당했다. 재혼한 뒤에도 일상에 적응하지 못했던 그녀는 21년째 자신의 삶을 뒤흔들고 있는 그 아저씨를 찾아가 살해했다. 그리고 그녀는 법정에서 자기가 죽인 것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었다고 말했다.
오래 전, 그것도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를 아침 댓바람에 꺼내는 것은 최근 아동성폭력과 관련된 법이 제정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국회에서 통과된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이 그것. 일명 화학적거세법으로, 내년 7월부터 19세 이상 성인이 16세 미만 아동을 성폭행하면 법원 판결에 따라 성충동을 억제하는 약물치료를 받게 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와 관련, 과도한 신체적 형벌은 인권침해라는 지적이 있는 모양이다. 과연 16세 미만 아동을 성폭행한 자에게 성욕을 억제하는 약물을 투입하는 것이 과도한 신체적 형벌일까.
그러고 보면 그동안 아동성폭력에 대한 처벌은 죄질에 비해 솜방망이 수준이었다. 초등학생을 7번 성폭행해 임신시킨 50대 경비원은 징역 6년(2005년), 10세 조카를 3년간 성폭행한 30대는 징역 8년(2009), 13세 여중생을 납치해 지하창고에 가두고 수차례 성폭행한 50대는 징역 3년(2009년)의 벌을 받았다.
그리고 겨우 여덟 살짜리 여자아이를 장기가 몸 밖으로 빠져나오고 대소변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성폭행한 50대는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2008년 발생한 조두순 사건이다. 그를 재판한 판사는 판결문에 ‘피해자 및 피해자의 가족은 평생토록 지울 수 없는 참담하고도 심각한 고통과 정신적 상처를 입었으며, 특히 피해자는…정서적 육체적 성장과정에서 심한 고통을 받을 것이 분명하고 평생 동안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적고 있다.
성폭력 피해 아동은 물론 그 가족의 삶도 파괴한 가해자의 인권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더욱이 화학적 거세는 처벌이 아니다. 가해자의 소아성애 또는 성도착증 등 병적인 상태에 대한 치료 대책이며, 재범 예방책일 뿐이다. 성폭력범은 재범률이 높다. 조두순, 김길태, 김수철 등 최근 일어난 아동성폭력의 가해자는 모두 재범자다. 그들이 처음 범행을 저질렀을 때 대책을 세웠다면 제2, 제3의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법 제정과 관련해 논의될 사항은 가해자 인권이 아니라 화학적 거세 대상을 아동성폭행범으로 한정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문제 아닐까. 성폭행당한 성인 여성의 정신적 육체적 피해와 그 후유증도 아동 피해자 못지않다. 성폭행 성인 여성 피해자들을 “온힘을 다했다면 피할 수 있었을 텐데” 또는 “그렇게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니니 그렇지” 등등 남성 중심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김부남 사건을 계기로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됐으나 성폭력에 관한 처벌 과정을 보면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가부장적 사고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화학적 거세가 인권 차원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것도 남성에게 ‘성’은 당연히 향유할 권리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약물치료 비용과 약물 부작용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는 모양인데, 화학적 거세보다 비용이 적게 들면서 약물 부작용도 없고 지속가능한 예방법을 도입하는 것은 어떨지. 미국 텍사스주와 독일 덴마크에선 외과적 거세를 도입하고 있다고 한다. 제2, 제3의 ‘김부남’을 예방하기 위해선 이 땅에서 ‘짐승’을 추방해야 하고, 그 방법이 있다면 망설일 필요가 있을까.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