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아침] 장자
입력 2010-07-05 17:27
중학생이 되어 성경을 직접 읽기 시작했을 때 그 내용 중 불만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놀부처럼 되지 말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는데,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도 거의 같은 패턴이었고 에서와 야곱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창 25:34)
그러고 보면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모세는 아므람의 둘째아들이었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다윗은 이새의 막내아들이었다. 하나님은 마치 장자 기피증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신약 성경에서도 장자는 역시 불리한 평가를 받고 있다.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마 21:28)
장자는 가겠다고 하더니 가지 않았고, 둘째아들은 싫다고 하더니 나중에 뉘우치고 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탕자의 비유에서도 아버지는 장자를 차별한다. 집에서 일한 장자를 위해서는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잡아 준 적이 없는 아버지가 미리 받은 유산을 다 날리고 돌아온 탕자를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열어 준다. 도대체 장자는 왜 성경에서 이렇게 야속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일까?
“모든 첫 태생은 다 내 것이며”(출 34:19)
출생의 순서는 자신이 선택할 수 없다. 즉 장자는 하나님이 택한 존재다. 그에게는 아비를 대신해 아우들을 돌보고 가르치라는 책임이 부여된다. 부모는 장자를 각별히 우대하면서 늘 책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많은 장자들이 가인처럼 권위를 내세워 폭력을 쓰거나 에서처럼 그 책임을 내던졌다. 이런 무책임한 장자들 때문에 하나님은 늘 부당한 비난을 받아왔다. 그래서 하나님은 개인이 아닌 집단을 택하기로 했다.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 4:22)
그러나 이스라엘 역시 그 장자의 책임을 버리고 권력 투쟁에만 몰두했다.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를 대신하게 된 레위 지파의 제사장 아비아달과 사독이 그러했다. 땅 위에 세운 하나님의 나라가 멸망하여 수모를 당할 때 제사장 집안의 마카비가 세운 하스몬 왕조는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로 갈라져 서로 싸웠다. 양들을 팽개쳐 두고 권력에만 집착했던 그들은 예수께서 병자들을 보살피고 가르칠 때마다 찾아와 물었다.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마 21:23)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버려진 양들을 보살피고 가르치기 위해 진정한 장자로 세상에 오셨다. 침 뱉음과 매 맞음과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
그분이 맏아들이라면 그분의 제자인 크리스천은 오늘날의 장자들이다. 그런데도 그분이 당했던 수치와 고난은 애써 피하며 권위와 권력에만 민첩한 장자들이 있다면 이 장자의 명분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약력=1961년 ‘현대문학’에 소설 추천, 65년 서울대 공대 기계공학과 졸업, 85년 기독교문화상 수상, 이태원교회 장로, ‘땅끝에서 오다’ ‘아들의 나라’ 등 장편소설 19편, ‘성경과의 만남’ 등 칼럼집 11권.
김성일(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