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상면] 한국영화, 발전과 추락의 기로에서

입력 2010-07-04 19:27


영화지원에 대해 또다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겨울부터 최근까지 영진위(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 과정에 대해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데, 지난주에 문화관광부는 “독립·예술영화 지원을 중단하고 영화유통 및 제작지원 사업 등으로 지원금을 전향하겠다”고 했다. 영화지원에 관한 일련의 사태들은 우리 영화의 현황과 발전에 대해 다시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영화는 질적·양적으로 많은 발전을 해 왔다. 한국영화는 해외 영화제에서 여러 차례 수상을 했고, 연간 관객수 1억5000만명에 이르는 작지 않은 시장을 갖고 있으며, 미국영화에 무너지지 않고 자국 영화시장을 잘 방어하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에 속한다. 2001년 이후 한국영화 점유율이 거의 매년 50% 내지 그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영화 내용의 성장도 필요하겠지만, 이 정도면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들과 비교해서 우리는 매우 경쟁력 있는 영화산업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왜 영화발전을 위한 중심 기구인 영진위는 자주 삐거덕거리고 논란의 중심에 서 있을까.

영화발전 못따르는 영진위

영화작품에 관련된 지원 문제는 비단 올해에만 발생한 것이 아니라, 영진위의 영화지원이 시작되고 10여년 동안 계속 있었다. 더구나 영화지원의 문제는 독립·예술영화에만 있지 않다. 매년 전국 여기저기서 개최되는 영화제들의 의미와 실효성도 문제이다. 관객과 지역사회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지원금을 받기 위해 행사를 벌이는 듯한 인상도 든다.

여기에다 영진위 정책실은 한국영화 점유율 등 몇몇 통계만 내놓을 뿐 무역자유화와 디지털 기술 등으로 급변하는 매체 환경에 필요한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영진위라는 기구의 조직과 역할에 전반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영화의 발전상에 비해 영화행정의 수준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예술문화의 공공지원이라는 틀에서 ‘영화진흥’을 실천하고 있는 기관은 유럽에서 프랑스의 국립영상센터(CNC), 영국의 영국영화연구원(BFI), 독일의 영화진흥원(FFA) 등이 있다. 하지만 이 세 나라의 기관들이 하는 일과 인력 구성은 영진위와 사뭇 다르다. 이 기관들은 정권에 따라 바뀌는 진흥위원들이 일하는 곳이 아니며, 작품과 감독·영화단체에 지원금 나눠주기 방식을 취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각기 차이는 있지만, 비상업적 작가영화의 제작지원과 영화산업의 인프라 구조개선, 자국 영화의 해외교류 및 건전한 영상문화 확산과 다양한 계층을 위한 영상교육에 주력하고 있다.

이제 영진위의 문제는 영진위 자체만이 아니라, 그 조직을 만들어놓은 문화관광부도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먼저 영화유통과 제작 분야에서는 인프라 구조 개선이 무엇보다 필요한데, 현재 배급-상영에서 소수 대기업의 독과점과 ‘작은 좋은 영화’들이 압사되는 구조문제가 개선되었으면 한다. 우리 관객들은 유럽 관객 이상으로 많이 영화를 보고 있음에도 안타깝게, 때리고 부수는 영화들에서 벗어나 품격 있는 세계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시네마테크를 수도에서 갖고 있지 못하고, 영화박물관은 없고, 수도 주변에 영화 테마파크도 없다.

매체환경에 맞는 정책 기대

또 현 시대 문화의 주요 요소인 영상에 대해 교육하고 미래의 영상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교육장도 별로 없다. 영화진흥기금이 시민관객들의 입장권 일부에 근거하는 한, 문화관광부는 많은 시민들이 건전한 영상문화를 즐기고 배울 수 있는 부분들을 배려해 주었으면 한다.

2010년 영화 환경은 그다지 좋지 않다. 영화에서 한류는 지나가서 한국영화의 해외판매는 격감하고 있다. 다양한 디지털 영상매체들의 출현으로 인해 영화의 입지는 불안하고, 디지털 매체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고비용과 새로운 기술을 요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영화는 앞으로 헤쳐나갈 길이 험난하니 영화정책을 둘러싸고 서로 다투는 시간조차 아까워 보인다. 다시 한국영화의 발전과 추락 사이에 처한 국면에서 영화계는 중지를 모았으면 한다.

이상면(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