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신데렐라 언니’서 정통 멜로 선보인 배우 천정명 “제 모습 잔혹한 범죄자에도 어울리지 않겠어요?”

입력 2010-07-04 19:27


“은조야….”



KBS ‘신데렐라 언니’(신언니)에서 송은조(문근영)를 애타게 부르는 홍기훈(천정명)의 대사는 여성 시청자의 마음을 흔들었다. 드라마가 끝난 지 한달이 지났는데도 개그우먼 송은이는 방송에서 “천정명이 ‘은조야’하고 불러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고, 네티즌들은 인터넷 게시판에 홍기훈을 그리며 여운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서울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만난 천정명(30)도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신언니’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했다.

드라마 종영 후 일본에서 휴식을 갖고 차기작을 고르고 있는 그는 “거리를 걷다가 드라마 주제곡인 예성의 ‘너 아니면 안돼’가 나오면 당시 촬영하던 게 새록새록 기억나고, 홍기훈으로 살아나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팬들이 주로 사인을 요청했는데, 요즘은 은조를 부르듯 이름을 불러달라고 해요. 이름을 불러주면 너무들 좋아해주셔서 저도 참 감사하죠.”

천정명은 이 작품을 통해서 그간 고정된 ‘귀여운 연하남’ 이미지를 벗고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가진 성숙한 남자로 거듭났다. 달달한 대사와 밝은 웃음 위주의 로맨틱 코미디는 잘 해왔지만, 절절한 대사와 깊은 감정선을 넘나드는 정통 멜로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신언니’는 시적이고 함축적인 대본을 써온 ‘봄날’ ‘피아노’의 김규완 작가의 작품이다.

“대사가 정말 문학적이어서 연기하면서 문학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대본 자체가 한번에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대본에 점점점(말줄임표)이 너무 많은 거예요. 말줄임표가 많다보니 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래서 초반에는 대사의 행간을 표현 못하고 무시하고 연기했는데, 그게 시청자 눈에 보였는지 반응이 안 좋았어요.”

드라마 초반 그는 어색한 감정표현, 부정확한 발음이 지적받으면서 ‘연기력 논란’에 시달렸다. 기훈이 겪고 있는 은조에 대한 안타까움과 배신감, 애틋함 같은 복합적인 감정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것이다.

“말줄임표가 있는 대목에서는 눈빛으로, 얼굴로 안에 있는 감정을 표현해야하는데 초반엔 잘 못했어요. 중반부터 고민하면서 안에 있는 것을 최대한 끌어내려고 노력했어요. 해보지 않은 연기였고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패션70’ ‘굿바이 솔로’ ‘여우야 뭐하니’ 등 천정명의 전작을 꼽아보면 다들 흥행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수작들이다. 그는 “드라마 보는 ‘촉’이 있는 것 같다. ‘신언니’는 처음부터 잘 될 줄 알았다”면서 “하지만 영화는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라며 웃었다.

귀엽고 밝은 전형적인 동안인 탓에 작가와 감독들은 “이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나쁜 짓을 해도 시청자가 용서할 수 있을 것”이라며 격려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신언니’를 발판으로 무게감을 더한 그는 다음에는 외모는 선하지만 범행은 잔혹한 이중적인 악역이 탐난다고 했다.

“영화 ‘그놈 목소리’나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잔혹한 범죄자요. 사람을 죽이고 강간하는 잔혹한 범인이지만 막상 얼굴을 보면 아이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을 것처럼 선하게 생긴 거예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아요?(웃음)”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