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마이너스 금리인데… 시중 돈, 왜 은행으로 몰릴까
입력 2010-07-04 18:24
지난달 16일 코스피지수는 1705.33으로 거래를 마쳤다. 기업 실적이 좋은 데다 해외 악재도 안정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증시는 모처럼 기지개를 켤 기세였다. 이날부터 29일까지 코스피지수는 1700선을 바닥으로 다졌다. 하지만 주식형 펀드에서 잇따라 뭉칫돈이 빠져나가면서 지수 상승에 발목을 잡혔다. 16일 1125억원이 빠져나간 것을 시작으로 28일까지 2조740억원에 이르는 돈이 국내 주식형 펀드를 떠났다.
6개월 동안 국내외 주식형 펀드에서 10조원이 넘는 자금이 썰물처럼 밀려 나갔다. 시중 자금이 펀드를 떠나는 동안 은행으로는 돈이 몰려들었다. 물가상승률에 세금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인 데도 아랑곳없다. 올 들어 5월까지 은행권 정기예금에는 63조641억원에 이르는 돈이 들어왔다. 경기가 강한 회복세를 보이는 데도 ‘역(逆) 머니 무브(money move)’ 현상(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위험자산에서 안전자산으로 돈이 이동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59조7013억원 vs 10조4262억원=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5월 말 은행권 저축성예금(정기예금+수시입출식예금) 잔액은 701조484억원이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 65조3107억원이 늘었다. 지난달 말 기준 통계치는 오는 9일 발표한다.
6개 시중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기업·외환은행)으로 범위를 좁히면 쏠림현상은 더 뚜렷하다. 이들 은행의 정기예금은 지난달 말 현재 356조6537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59조7013억원(20.1%)이나 증가했다. 6개월 증가액이 지난해 연간 증가액 31조8203억원의 배에 육박했다.
심지어 요구불예금(예금주가 지급을 원하면 언제든지 조건 없이 지급하는 예금)에도 돈이 몰렸다. 지난달 말 6개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은 180조7676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4조9439억원 늘었다.
반면 주식시장을 대표하는 펀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상반기에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6조7677억원이 순유출됐다. 해외 주식형 펀드까지 감안하면 상반기에만 10조4262억원이 펀드를 외면했다. 지난해 전체 유출액 10조6280억원과 맞먹는 수치다.
◇가속도 붙는 ‘안전자산’=유럽 재정위기, G2(미국·중국) 경기둔화 우려 등으로 한껏 불안해진 금융시장이 ‘돈의 이동’을 부추기고 있다. 우리 경제 성장률이 월등하고, 재정 상태 등을 고려할 때 기초체력(펀더멘털)이 탄탄하다는 분석에도 시장의 불안감은 가시질 않는다.
특히 펀드 시장에서는 코스피지수 1700을 사이에 두고 ‘거품 빼기’가 치열하다. 펀드 열풍이 시작된 2007년부터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까지 펀드로 몰렸던 돈이 코스피지수 1700선에서 계속 빠져나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금투협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08년 6월까지 코스피지수 1600대 이상∼2000대 미만 구간에서 펀드에 유입된 자금은 29조251억원이다. 반면 2008년 7월부터 올 들어 지난달까지 이 구간에서 12조595억원이 유출됐다.
전문가들은 하반기에도 안전자산 선호현상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은 “남유럽국가 재정위기가 불거진 뒤 불안 상황이 더 심해져 위험자산을 바라보는 시각이 보수적인 쪽으로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한금융투자 문기훈 센터장은 “유럽 재정위기는 단기간 해소가 어렵고, 중국과 미국 경기를 바라보는 비관론이 부상하고 있다. 위험자산 이탈현상은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