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 다큐 영화 한편에… 벌집 쑤신 열도

입력 2010-07-04 22:07

지난 3일 일본 요코하마 나카구에 있는 ‘요코하마 뉴 테아트르’ 극장 앞. 난데없이 나타난 시위자들로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경찰관 50여명이 극장 앞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으나 남성 7명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영화 상영을 중지하라!”고 외쳤다.

이날 개봉된 영화는 지난 3월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더 코브:슬픈 돌고래의 진실(The Cove)’이었다.

요미우리 등 현지 언론은 우익 세력의 거센 반대 속에 도쿄, 오사카 등 일본 6개 주요 도시에서 ‘더 코브’가 개봉됐다고 보도했다. 곳곳에서 시위가 있었지만 큰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영화기에=‘더 코브’는 일본의 작은 어촌 마을인 와카야마현(和歌山縣) 타이지(太地)에서 매년 2만3000여 마리의 야생 돌고래가 무차별적으로 살육되는 현장을 고발한 환경 다큐멘터리다. 루이 시호요스 감독을 비롯한 배우와 할리우드 수중 촬영가, 녹음 전문가, 다이버 등 영화제작 참가자들은 현지 어부들의 테러 위협에 굴하지 않고 영화를 찍었다. 돌고래를 작살로 찍어 내리는 선혈이 낭자한 동물 학살 장면이 몰래카메라로 촬영됐다.

영화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요미우리신문은 도쿄 ‘시네마트 극장’의 경우 전 회 매진됐다고 전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상영 가치가 충분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남성 관람객(65)은 “돌고래가 죽임을 당하는 장면이 너무 끔찍했다”면서 “상영 중지 요구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 상영=일본인의 고래고기 사랑은 국제적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멸종위기에 놓인 고래를 보호하려는 국제 사회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고래 남획을 다룬 이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되기까지의 과정도 험난했다. 고래 사냥으로 유명한 타이지 마을 어부들은 자신들의 허가 없이 영화가 상영돼선 안 된다고 항의했다. ‘신보수’, ‘민간우파’ 등 우익단체들은 “더 코브는 일본의 자존심을 훼손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담고 있는 반일 영화”라며 지난 4월부터 배급사인 언플러그드에 항의활동을 펼쳤다. 일본 정부가 테러 단체로 낙인을 찍은 과격 포경반대 단체 ‘시 셰퍼드’와 연계돼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영화는 당초 지난달 26일 개봉 예정이었다. 하지만 상영 예정 극장 앞에서 시위가 계속됐고 하루에도 수백 통의 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도쿄 시부야의 시어터N시부야 등 주요 3개 개봉관은 “관객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고 극장 운영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며 결국 상영을 포기했다.

우익 단체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영화인들과 언론인, 사회단체들도 이에 반기를 들면서 영화 개봉에 힘이 실렸다. 영화인들과 언론인, 변호사연합회 등은 “표현의 자유를 빼앗았다”며 영화 상영을 촉구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