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몸과 마음 치유하는 천혜의 종합병원
입력 2010-07-04 17:37
4년전 간암 진단을 받은 유모(52)씨는 산에서 살고 있다. 유씨는 수술과 항암 치료를 거치며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산으로 들어갔다. 맑은 공기와 숲의 짙은 향취를 맡으며 건강을 회복해 가는 느낌을 받고 있다. 그는 “거무튀튀하던 얼굴 색이 맑아지고 몸이 가볍고 건강해지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씨처럼 숲에서 건강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숲 치유(forest healing)’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숲(산림) 치유는 ‘산림 휴양’ 같은 소극적 활동을 넘어 산림을 심신과 질병 치유에 활용하려는 시도다. 흔히 알고 있는 ‘산림욕’ 보다 더 진보된 개념이다. 최근 이러한 산림의 질병 치료 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가 잇따라 발표되면서 현대 의학을 보완하는 자연요법으로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처음으로 숲 치유의 과학적 효능을 입증하기 위한 임상 연구가 시작돼 주목된다.
◇숲은 최고의 치료제=숲이 건강 증진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주된 이유는 나무의 향기와 수액에 포함돼 있는 ‘피톤치드’ 때문이다. 피톤치드는 ‘식물’을 의미하는 ‘피톤(Phyton)’과 ‘살균력’을 뜻하는 ‘치드(Cide)’를 합친 말이다. 나무가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 것으로 살균 효과와 함께 식물에 유익한 곤충을 유인하는 기능을 한다. 주성분은 ‘테르펜’이라는 물질로, 숲 속의 향긋한 냄새를 만들어 낸다. 피톤치드는 심리적 안정감 뿐 아니라 말초 혈관을 단련시키고 심폐 기능을 강화한다. 기관지 천식과 폐결핵, 아토피피부염 치료, 심장 강화에도 유용하다고 알려져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 통합의학연구소 이성재 교수는 “휘발성 물질이기 때문에 숲 속에서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몸 깊숙이 테르펜을 흡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제대 백병원 스트레스클리닉 우종민 교수는 “숲을 보기만 해도 명상할 때 분비되는 뇌 전두엽의 알파파가 증가해 스트레스나 불안장애 등에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숲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우울증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증상이 크게 호전됐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피톤치드는 또 인체의 가장 강한 면역세포 중 하나인 ‘NK세포’를 활성화해 암세포 같은 이상 세포를 발견해 죽이는 역할도 한다.
피톤치드 발산이 가장 많은 계절은 봄과 여름이다. 특히 숲이 본격 성장하는 5∼6월, 햇볕을 가장 많이 받는 한여름에 많이 생성된다. 하루 중 피톤치드 발산량이 가장 많은 때는 해뜰 무렵인 새벽 6시와 오전 11∼12시 사이다. 새벽에 숲 속을 거닐 때 다른 때보다 훨씬 상쾌한 기분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피톤치드는 활엽수보다는 소나무와 잣나무 등 침엽수림에서 많이 생성되고 특히 ‘편백나무’가 가장 많이 함유하고 있다. 숲이 깊을수록 피톤치드 농도는 증가한다. 숲 속에 흐르는 계곡의 물가나 폭포 주변에는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음이온도 많은 만큼 올 여름 휴가는 침엽수림이 울창한 숲을 찾아 떠나보는 것이 어떨까. 이성재 교수는 “독일은 숲의 질병 치료 효능을 인식하고 국가 차원에서 산림욕을 질병 치료에 이용하는 유일한 나라”라면서 “산림욕을 포함한 자연요법에 약 8000억원을 지원할 정도로 피톤치드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국내 첫 숲 치유 임상연구 시작=고려대 안암병원 통합의학연구소는 국립산림과학원과 함께 오는 9일부터 ‘숲의 치유적 요소가 신체 및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 평가’를 위한 임상연구를 시작한다. 만 18세 이상 70세 미만의 부정맥 및 가벼운 고혈압 환자 80명을 대상으로 실험군과 대조군으로 나눠 병원과 경기도 양평 산음자연휴양림에서 약 한달 반 정도 기간에 진행한다. 이 교수는 “도시와 숲에서 여러가지 치료 요법을 적용했을 때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과 ‘HRV(심박변이율)’는 어떻게 변하고 스트레스는 얼마나 저하되는지 등을 비교 측정할 예정”이라면서 “연구결과는 10월쯤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