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22)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입력 2010-07-04 17:40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지난해 6월 말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국내외 관광객을 대거 불러모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문화재청이 집계한 조선왕릉 관람객 현황에 따르면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전이나 이후나 별로 차이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왕릉은 단순히 임금이나 왕족의 무덤이 있는 곳만이 아닙니다. 그 시대의 역사가 있고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적이라는 겁니다. 조선왕릉이 국내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명실공히 세계문화유산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에 얽힌 갖가지 사연을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과 연계시켜 흥미롭게 소개하는 스토리텔링의 개발이 필수적이라고 하겠습니다.

현존하는 조선왕족의 무덤은 모두 119기랍니다. 왕과 왕비가 묻힌 능(陵)은 42기, 왕세자와 세자비 또는 왕의 부모가 묻힌 원(園)은 13기, 그 외 왕족이 묻힌 묘(墓)는 64기입니다. 42기의 능 가운데 북한 개성에 있는 제릉(태조 원비 신의왕후)과 후릉(정종과 정안왕후)을 제외한 40기가 남한에 있는데 한 왕조의 무덤이 온전하게 보존돼 있는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들답니다.

왕릉 택지는 배산임수(背山臨水)로 북쪽의 주산을 뒤로하고 그 중 허리에 봉분을 이루며 좌우로는 청룡과 백호의 산세를 이루고 왕릉 앞쪽으로 물이 흐르며 멀리 안산을 바라보는 것을 표준으로 삼았다는군요. 건원릉(태조)은 고려의 왕릉인 현정릉(공민왕과 노국공주) 제도를 기본으로 조성됐는데 이는 조선왕릉의 교과서격인 ‘국조오례의’의 표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태조는 아들 이방원(태종)에게 개성에 묻어줄 것을 원했으나 참배를 위해서는 도성 가까이 능을 조성해야 했기에 동구릉에 장지를 정했답니다. 태조의 건원릉 봉분에는 억새가 무성한데 ‘함흥차사’ 이후 부자지간의 한을 끝내 풀지 못한 태종이 개성에 있는 억새를 이곳으로 옮겨 심어 태조의 영혼을 기렸다는 겁니다. 지금도 벌초는 한식인 4월 5일, 1년에 한 번 실시하고 있지요.

왕릉에 얽힌 사연도 가지가지입니다.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는 당초 지금의 서울 정동에 묻혔으나 계비를 원수처럼 여긴 이방원의 분풀이로 무덤이 파헤쳐져 정릉으로 옮겨갔지요. 요즘 드라마 주인공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동이’ 숙빈 최씨는 숙종의 계비로 경종에 이어 임금이 된 영조의 어머니이지만 숙종 당시 왕후로 추존되지 못했기 때문에 능을 쓰지 않았답니다.

숙종과 인현왕후·인원왕후, 장희빈의 무덤이 있는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은 ‘여인천하’의 파란만장한 드라마의 현장이며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순종과 순명황후·순정황후의 능이 있는 남양주시 홍릉·유릉은 구한말 아픈 역사가 깃든 곳이죠. 단종이 묻힌 강원도 영월의 장릉은 홀로 멀리 떨어져 외롭기 그지없고요. 뛰어난 경관과 숱한 역사를 지닌 조선왕릉, 삶의 영욕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입니다.

문화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