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흐름서 발견한 삶의 리듬… 12인의 변주곡 Cycle, Recycle(순환, 재생)展

입력 2010-07-04 17:41


‘순수형태’라는 제목으로 구름을 주로 그려온 강운은 최근들어 바람에 이어 물방울로 소재의 변화를 꾀했다. 아크릴판 위에 놓인 화선지에 한 번의 붓질로 완성시킨 작품 ‘순수형태-물위를 긋다’는 영롱하게 빛나는 물방울의 응축된 에너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갖가지 형태의 사물이 생기고 머물고 변화하고 소멸하는 ‘순환과 재생’의 이미지를 상징하고 있다.



일필휘지의 붓질로 변화무쌍한 형태를 그려내는 오수환은 ‘변화’라는 연작을 통해 자연, 인간, 사물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유기적인 율동감을 이끌어낸다.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휙휙 즉흥적으로 그린 것처럼 보이는 그의 그림들은 숱한 드로잉 작업으로 정교하게 계획된 것이다. 작가는 눈에 보이는 세계, 온갖 시끄러운 모양과 소리에서 벗어나려 한다.

서울 삼성동 인터알리아 아트컴퍼니에서 22일까지 열리는 기획전 ‘Cycle, Recycle’(순환, 재생)은 세상 모든 것이 관계를 떠나서는 상생할 수 없다는 동양의 자연사상을 바탕으로 작가 12명의 작품 100여점을 통해 사회적 갈등과 문제점을 극복하는 해답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개성 넘치는 작가의 작업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삶에 대한 접근 방법에서는 서로 통한다.

생성과 소멸, 자연과 인간에 대한 통찰과 사유를 작품으로 표현하는 작가들에겐 별로 쓸모가 없는 물건들도 작업의 소재가 된다. 사진작가 구본창은 닳아서 납작해진 비누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비누는 각각의 삶을 살아낸 사람들의 얼굴을 닮았다. 흔한 병을 촬영하는 이경민과 용도 폐기된 영화필름을 재조립하는 김범수는 희로애락이 반영된 우리 삶의 모습을 되짚어보는 명상으로 이끈다.

구리 선이나 황동을 땜질로 이어 나뭇잎, 꽃잎, 항아리 등을 만드는 정광호, 처연한 듯하면서도 강한 생명력을 발산하는 엉겅퀴와 일렁이는 물속에서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것만 같은 붉은 잉어들을 화면에 옮기는 박성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파도를 간결하게 그리는 박신혜의 작품은 자연의 순환고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모습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유도한다.

식물이 가장 푸르렀던 시절을 지나 쇠잔해가는 가운데 지속되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그리는 도윤희의 작업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삶을 투영한 사색의 기록이다. 단색 캔버스 위에 투명한 색을 겹겹이 쌓아올리는 홍수연, 특수 제작한 입체 캔버스에 ‘타임 스페이스’를 표현하는 장재철, 서울 근교의 산을 그리는 정주영의 작품도 자연과 인간의 뗄 수 없는 관계를 보여준다.

전시는 30대부터 60대까지 폭넓은 연령대 작가들의 다양한 장르와 형식의 작품으로 구성됐지만 시공을 초월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잘 어울린다. 세계화와 자본주의 체제에서, 질주하지 않으면 뒤떨어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만연한 현실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들이다. 전시를 보고 나면 떠오르는 생각.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다(02-3479-0114).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