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귀질환재단’ 설립 아주대 김현주 명예교수 “희귀 유전병 가족 염원 외면할 수 없었죠”
입력 2010-07-02 18:04
4대에 걸쳐 가족 8명에게 대물림된 희귀 퇴행성 신경질환인 ‘실조증’ 때문에 고통의 세월을 살아 온 장모(부산 거주)씨는 2003년 1월 28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딸의 시신을 아주대병원 유전학클리닉에 기증하면서 희귀병에 대한 연구를 요청했다. 그로부터 3년 후 가장인 장씨(58) 또한 병의 원인 파악은 물론 치료조차 해보지 못하고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이번엔 아내가 남편의 시신을 기증하며 희귀병에 대한 연구와 치료제 개발을 재차 눈물로 부탁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당시 연구비 부족으로 이들 가족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다.
이를 안타까워한 의학유전학과 김현주(69·사진) 명예교수가 최근 희귀병 진단 및 치료법 연구 활성화와 환자 및 가족을 위한 전문 유전 상담 지원, 환자를 위한 특수교육 및 자원봉사 연계, 저소득 환자 의료비 지원 등을 목표로 한 ‘한국희귀질환재단’을 설립했다. 희귀병 환자와 가족들이 당면한 문제들을 좀 더 근본적이고 종합적으로 접근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함이다.
김 교수는 2일 “사랑하는 딸과 남편의 시신을 보내면서 유전병에 대한 연구를 요청하는 가족의 염원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설립 취지를 밝혔다.
재단 설립에는 자유선진당 이명수 의원, 대한의사협회 경만호 회장, 법률사무소 ‘해울’ 신현호 대표, 서울의대 유전체학연구소 서정선 교수 등 각계 인사 30여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재단은 앞으로 뜻있는 개인이나 기업들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활동할 예정이다.
김 교수는 “유전 질환의 조기 진단과 효율적인 치료는 연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현재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의료비 지원 못지않게 연구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2001년 비영리 민간 단체인 한국희귀질환연맹을 설립, 국내 희귀질환 치료에 대한 사회적 여건을 조성하는 데 힘써 왔다. 김 교수는 “지난 10년간 희귀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과 의료비 지원 확대 등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유전 질환에 대한 전문 의료인력 부재와 정부 예산 부족 등으로 인해 체계적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암의 경우 국내에 1000여명의 암 전문의가 있어 조기 진단과 치료, 예방 등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희귀 질환을 전문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임상유전학 전문의는 수십 명도 안돼 희귀 질환의 효율적 관리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김 교수는 “희귀병을 다루는 임상유전학 분야의 낮은 의료 수가와 힘들고 경제성이 적은 전공을 회피하는 국내 의료 현실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따라서 희귀 질환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공공의 제도’ 같은 실질적 지원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또 “유전 상담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와 유전 상담사 교육 및 수련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며 희귀 질환 관련 법안 제정도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