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의 상처를 색다르게 풀어낸 성장소설… 손홍규 장편 ‘이슬람 정육점’

입력 2010-07-02 17:51


소설가 손홍규(35)의 장편 ‘이슬람 정육점’(문학과지성사)은 올해로 60주년을 맞는 한국전쟁의 상처를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성장소설이다. 이방인에게 입양된 한 소년이 전쟁의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과 부대끼어 살아가면서 상처를 치유해 가는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주인공 ‘나’는 보육원에 있다가 터키인 하산에게 입양돼 서울 한남동 이슬람 사원 근처 허름한 동네에서 살고 있는 소년이다. 보육원 시절 이상한 행동으로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 찍힌 전력이 있는 ‘나’는 틀에 박힌 제도 교육을 거부하고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나’의 몸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큰 상처가 있다. 나중에 하산으로부터 그 상처는 총상이라는 말을 듣는다. 시간이 흘러 하산이 기력을 잃고 쓰려져 일어나지 못하게 되자 ‘나’는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사랑한다”고 말한다.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서로를 보듬게 되면서 진정한 가족으로 태어난 것이다.

“나는 내 몸 속으로 의붓아버지의 피가 흘러들어오는 걸 느꼈다.(중략)나는 훗날 내 자식들에게 나의 피가 아닌 의붓아버지의 피를 물려주리라.(중략) 그날 나는 이 세계를 입양하기로 마음 먹었다.”(236쪽)

등장 인물들은 대부분 쓰라린 상처를 안고 있다. 하산은 한국전쟁에 참전해 가슴에 총상을 입었다. 전쟁이 끝났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국에 남아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다. 독실한 이슬람 교인인데도 이슬람에서 금기시하는 돼지고기를 파는 것은 전쟁이 안겨준 상처 때문이다. 전투 중에 누군가의 살점을 씹어 먹었던 기억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아직도 그를 괴롭힌다.

그리스군으로 한국전쟁에 참가한 야모스는 그리스 내전에서 사촌 일가를 적으로 오인해 사살한 죄책감 때문에 귀국하지 않고 남아 비루하게 살아간다. 한국인 ‘대머리 아저씨’는 전쟁의 상처로 기억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후 망상 속에서 지낸다. 충남식당 주인 ‘안나 아주머니’는 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피해 도망쳐왔고, ‘나’의 친구 유정과 ‘맹랑한 녀석’은 가난과 가정불화로 인한 상처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작가는 “6·25와 관련된 장편을 쓰려고 몇 년 전부터 준비해 왔다”며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 한국 사회에서 또 다른 타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색다른 방식으로 썼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에게나 이 세상은 의붓세계”라며 “혈연으로 맺어져 있지 않은 의붓아버지와 의붓아들이 인간적인 교감을 나눴듯이 우리도 의붓세계와 교감하는 걸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라동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