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금지된 ‘플리바기닝’ 의혹

입력 2010-07-01 23:12

“고위공직자에 뇌물 줬다고 진술하면 형량 줄여주겠다”

검찰이 서울 강남의 한 유흥업소 업주를 수사하면서 고위 공직자에게 뇌물을 줬다고 진술할 경우 형량을 줄여주겠다고 회유하고 압박한 정황이 법원의 판결문을 통해 드러났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유죄 인정을 전제로 형량을 감해주는 면책조건부 진술제도(플리바기닝)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1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성지용)와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2008년 8월 이주성 전 국세청장의 뇌물수수 의혹 수사 과정에서 서울 역삼동의 유흥업소 2곳을 압수수색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당시 업주였던 서모씨를 국세공무원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로 체포해 조사했다고 밝혔다. 집행유예 중이던 서씨는 검찰이 고위 공무원에게 뇌물을 제공한 것을 실토하면 형량을 감해주고 구속하지 않겠다고 회유하자 고민에 빠졌다.

서씨의 변호인은 “검찰이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이 전 청장인 만큼 세무서 간부 정도에게 뇌물을 줬다고 해도 괜찮다”고 조언했고 서씨는 세무서 간부이던 조모, 최모, 이모씨에게 각각 월평균 100만원 이상을 제공했다는 진술을 했다.

검찰은 이들 외에 이 전 청장에게도 뇌물을 줬는지 추궁했지만 서씨는 이 전 청장이 자신이 운영하는 업소에 술을 마시러온 적은 있지만 뇌물을 주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당시 검찰은 이 업소가 이 전 청장의 비자금을 관리했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봤다.

결국 검찰은 이 전 청장에 대한 비위사실은 찾아내지 못한 채 지난해 1월 서씨로부터 15차례 1700여만원의 금품 및 향응을 받은 혐의로 세무서 간부 이씨를 국세청에 통보했다. 또 서씨에 대해서는 뇌물공여 혐의는 제외하고 조세포탈 혐의만 적용해 벌금 5000만원에 약식 기소했다.

비위 통보를 받은 이씨는 그해 7월 파면됐다. 이씨는 법원에 파면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서씨의 조세포탈 혐의만 약식 기소하고 뇌물공여 혐의는 기소조차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씨가 금품을 받았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의 집중 수사를 받던 이 전 청장은 2008년 11월 대우건설 인수와 관련해 20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6개월에 추징금 960만원의 형이 확정됐다.

검찰 관계자는 “증거관계에 의해 징계 통보를 국세청에 했을 뿐 형량을 줄여주겠다고 회유한 적은 없다”며 “플리바기닝 의혹은 서씨의 일방적인 주장이고, 이번 판결은 서씨 파면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는 행정재판이어서 사실관계를 엄밀히 따지는 형사재판과는 성격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양진영 임성수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