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인수, 장자 VS 며느리 ‘가문의 전쟁’
입력 2010-07-01 18:48
‘장자냐, 며느리냐?’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키운 현대그룹의 모태 현대건설 인수전이 며느리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과 장자 정몽구 회장의 현대·기아자동차그룹 간 경쟁 구도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찌감치 인수를 추진해온 현대그룹에 이어 범 현대가(家) 지원을 받는 현대차그룹이 가세한 모양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 인수 추진을 공식 부인했지만 업계에서는 개연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그룹, 유력 후보 부상=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과 현대중공업, KCC 등 범 현대가는 현대건설 인수 추진을 사실상 결정하고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현대건설 인수와 관련, 안정된 유동성을 확보한 현대중공업이 후보로 거론돼 왔지만 회사 측은 일단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재계 2위 현대차그룹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범 현대가에서 현금 보유 규모가 가장 큰 데다 재무구조도 탄탄하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현대건설 인수에는 3조∼4조원가량이 필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범 현대가가 지분을 나눠 인수할 경우 현대차그룹의 부담이 줄어들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대건설의 순이익이 연간 4000억∼5000억원 수준인 데다 업계 1위 건설사인 만큼 자금회수 기간도 단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현대차그룹 건설 계열사 현대엠코와의 시너지 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은 공식 부인했다. 그룹 관계자는 “현대건설 인수와 관련, 범 현대가 회동이나 합의사항은 없었다”면서 “현대건설 인수에 대해 어떤 방침도 정해진 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회장이 장자로서 현대가를 재건하려는 의지가 있는 만큼 현대차그룹의 인수 추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현대그룹, 인수 비상=이 같은 범 현대가의 분위기에 대해 현대그룹 측은 현대건설을 반드시 인수해 ‘적통(嫡統)’을 찾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특히 주력계열사인 현대상선에 의존하는 사업을 다각화하고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현대건설 인수가 필수적이다. 현대건설은 현대상선 지분 8.3%를 보유하고 있어 범 현대가 지분까지 포함하면 40%에 육박하게 돼 46%의 현대상선 지분을 가진 현대그룹 경영권에 위협이 될 수 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수주물량 확대 및 현대증권을 통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에도 긍정적이다.
현 회장은 지난 4월 그룹 비전 2020 선포식에서 “선대 회장께서 물려주신 자랑스런 현대그룹을 잘 키워 후배들에게 물려줄 막중한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며 현대건설 인수 의지를 재차 다졌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채권단의 재무구조 개선약정 체결 대상에 올라 현대건설 인수에 타격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외환은행 등 현대그룹 채권단은 30일 회의를 갖고 약정 체결시한을 7일까지 또 연기했다. 채권단과 약정을 맺을 경우 자산매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해 결국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그룹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확보한 현금 유동성만 해도 현재 1조3000억원 수준”이라며 “아무 문제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주식시장에서는 현대건설 인수 추진 소문이 돌면서 현대차가 5.19% 떨어지고 기아차 3.36%, 현대모비스 3.62% 각각 떨어지는 등 현대차그룹주가 동반 급락해 3조원 이상의 시가총액이 날아갔다. 반면 현대엘리베이터(8.02%), 현대상선(4.75%) 등 현대그룹주는 반등했다.
한편 현대건설 채권단은 이달 매각 주간사 선정을 시작으로 인수·합병(M&A) 작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또한 기업 실사와 매각공고, 예비입찰자 선정 등을 거쳐 연말까지는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방침이다.
최정욱 기자 jw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