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중 기자의 아프리카 다이어리 ④·끝] “아프리카가 뭐 이래?”… “역시 아프리카야!”
입력 2010-07-01 18:52
아프리카가 우리 시야에 들어온 건 순전히 남아공월드컵 때문이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 열리는 월드컵. 조금 궁금하기도 했다. 전쟁, 가난, 에이즈, 밀림, 난민촌…. 아프리카는 아직도 그러고 있나? 그런데 거기서 어떻게 월드컵이 열린다는 걸까? 적어도 우리나라 정도는 돼야 월드컵을 개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나?
아프리카 3개국 취재는 딱 그 수준에서 시작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영어가 공용어로 쓰이는 줄도 모르고, 모잠비크나 우간다라는 나라에도 공항이 있을까 궁금해 하면서, 비행기를 탔다.
“아프리카가 뭐 이래?”
지난 7일 반바지 차림으로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공항에서 내렸을 때,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다. 거기 사람들은 다 두툼한 외투 차림이었다. 모잠비크의 시골 중학교에서 한 여학생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보여줬을 때도 이 말이 튀어나왔다.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서 서울 남대문시장보다 더 큰 시장을 만났을 때도, 퇴근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교통 정체를 겪을 때도, 똑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역시 아프리카야!”
모잠비크 수도 마푸토의 최고급 호텔에서 샤워하려고 물을 틀었을 때,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수도꼭지에서는 누런 흙탕물이 나왔다. 공항 직원들이 우리 가방을 붙잡고 이 짐 저 짐을 뒤지면서 괴롭힐 때도 이 말이 흘러나왔다. 월드컵 중계방송 중간에 콘돔 사용법을 알려주는 공익광고가 나올 때도, 고속도로 위에서 고장 난 트럭이 하루가 지나서도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걸 봤을 때도,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아프리카는 익숙한 이미지와 낯선 이미지를 교차해서 보여줬다. 나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아프리카가 뭐 이래?”와 “역시 아프리카야!” 사이를 오가며 혼란스러워했다. 2주는 짧은 시간이었다. 기아대책이 우리 취재를 도왔지만 시간은 터무니없이 모자랐다. 우리가 한 나라에서 머문 시간은 이틀, 혹은 사흘에 불과했다. 결국 우리가 거기서 수집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에피소드뿐이었다.
아프리카에는 참혹한 빈곤이 존재한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집에서 7∼10명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살기도 한다. 에이즈와 말라리아로 죽는 사람이 여전히 많고, 치안이 위험한 곳도 있다. 정치와 공공서비스는 한눈에 봐도 후진적이고, 건물과 도로는 대개 허술하다. 맞다, 그게 아프리카의 현실이다.
그런데 아프리카에는 또 다른 모습이 존재한다. 도시가 있고, 중산층이 있고, 기업가들이 있다. 선거가 치러지고, 부모들의 교육열이 뜨겁고, 도시마다 건축 붐이 한창이다. 아프리카는 역사상 처음으로 부흥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것 역시 현실이다.
아프리카로 떠나는 우리에게 이석호(47) 아프리카문화연구소장은 “아프리카를 만나면 강렬한 향수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70년대 충청도 시골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낸 사람의 눈에 아프리카의 빈곤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가 겪어낸 가난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흙집을 헐어내고 벽돌집 짓는 모습을 볼 때, 여자들이 머리에 짐을 이고 다니는 모습을 볼 때, 도시에 나온 형이 동생들 학비를 고향집으로 부친다고 할 때, 야간자율학습 하느라 불이 환한 학교들을 볼 때, 나는 자꾸 한국을 떠올렸다. 우리가 지나온 과거와 재회하는 느낌이었다.
1983년부터 아프리카를 상대로 무역업을 하고 있는 정해정(55) MK인터내셔널 회장은 “2020년이 되면 아프리카가 아시아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7, 8년 전 취재차 방문했던 인도와 중국의 모습을 기억하는 기자의 눈에 현대 아프리카의 활기는 당시 그 나라들에서 뿜어져 나오던 열기와 흡사해 보였다.
우간다 캄팔라에 한 달에 1000명씩 중국 노동자들이 들어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도로에 가득 찬 일본 중고차들을 볼 때, 신축되는 힐튼호텔 건물을 바라볼 때, 흑인 정치인 입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이름이 나올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한국을 떠올렸다. 우리가 아프리카와 만나는 시간을 더 늦춰선 안 될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기아대책◆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국제 구호단체로 한국인 기아봉사단을 해외에 파견해 현지인들과 함께 일한다. 어린이들의 전인적 성장 지원, 농업과 수자원 개발, 병원과 대학 건립 등을 통해 지역공동체가 자립하도록 돕고 있다. 세계 74개국에 941명의 기아봉사단원을 파견했으며, 아프리카에서는 모잠비크 우간다 르완다 등 11개국에 23개 센터를 두고 활동 중이다.
◇후원 문의 : 02-544-9544/www.kfh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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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