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 (金)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입력 2010-07-01 17:52
찬송: ‘강물같이 흐르는 기쁨’ 182장(통 169장)
신앙고백: 사도신경
본문: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장3절)
말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는 것이 어떻게 복이 될까요? 일반적으로 부한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요, 가난한 사람은 저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던 유대 사회는 예수님의 말씀이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가난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정확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헬라어 단어에 가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페네스 가난이고, 둘째는 프토코스 가난입니다. 페네스 가난은 남는 게 없고 여유가 없는 가난, 즉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가난함을 말합니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는 가난입니다. 그러나 프토코스 가난은 파산을 당하거나 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가난입니다. 오늘날 양식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10초에 한 명 꼴이라고 하는데, 이처럼 프토코스 가난은 빌어먹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가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난은 바로 두 번째 프토코스의 가난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비천하고 가장 무력한 사람의 가난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게 무슨 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저주라고 부를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 말씀은 물질적 가난이 아니라 심령의 가난이요 마음의 가난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가난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는, 정말 지금 당장 손쓰지 않으면 곧 굶어죽게 되는 것처럼 가난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비우고, 완전히 항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천국이 임하는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다윗과 같은 사람을 꼽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 곳곳에서 자기는 가난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지금 당장 하나님이 어떻게 안 해 주시면 죽게 될 것처럼 다급하고 애달픈 심정으로 절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듯이 그는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엔 더 이상 가난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한 그의 마음은 언제나 가난했습니다. 양치기 시절이나 망명생활 할 때나 왕이 된 후에도 변함없이 가난한 마음을 유지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상태인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예수님은 천국이 임할 것이라는 선언을 하십니다. 이 천국이 임하는 복은 죽어서 가는 그 복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그 현장에서 천국을 누릴 것이라는 겁니다. 심령의 가난함으로 이 복을 마음껏 누리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기도: 교만한 마음과 더러운 탐심을 다 버리게 하시고, 다윗과 같은 심령의 가난한 마음을 주사 천국의 기쁨을 늘 경험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백동조 목사(목포사랑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