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묻혀있던 기단 1.6m 찾았다

입력 2010-07-01 00:16

조선 초기 숭례문(국보 1호)이 처음 지어질 당시 현재의 지표보다 1.6m 아래에 기단을 쌓은 것으로 드러났다. 숭례문의 원래 높이는 지금의 6.4m보다 높은 8m로 그동안 땅속에 묻혀있던 부분이 확인된 것이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방화로 소실된 숭례문 복원을 위한 사전 작업의 일환으로 문루를 떠받치는 기초시설인 육축(陸築·성문을 세우기 위해 큰 돌로 만든 기단)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숭례문의 원형을 찾아냈다고 30일 밝혔다.

발굴조사 현장에는 태조 이성계 시대에 숭례문을 처음 만들 때(1396~1398)의 육축 기초 지대석(址臺石·바닥에 깐 돌)과 문짝 문설주가 꽂힌 바닥돌인 문지도리석을 포함한 석재 1~2단이 현재의 지표면 160㎝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숭례문을 통행하던 15~16세기 조선전기 도로면은 현재의 지표 아래 160~170㎝, 17~20세기 중·후기 도로면은 현재보다 30~50㎝ 아래에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태조 때 숭례문이 축조된 이후 세종과 성종 때 중수되고, 문종 선조 숙종 고종 때 성곽이 계속 축조되면서 원래의 숭례문 기단이 묻힌 것으로 보인다고 조사단은 설명했다.

숭례문 동서 성곽은 기초를 쌓기 전에 지반을 튼튼하게 하는 지정말목을 박았으며, 조선중기에 축조한 성곽의 뒷면이 앞면의 성곽 지대석과 비교해 110~120㎝ 높게 위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선전기 도로는 지금의 아스팔트 도로를 닦는 방식과 흡사하게 잡석과 자갈, 흙 등을 다진 다음에 회색 모래를 깐 데 비해 중·후기층 도로는 박석을 깔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은 분청사기, 백자, 청화백자 등 14세기 말에서 19세기 말에 이르는 도자기와 20세기 일본사기 등이 확인돼 숭례문 축조 및 중수 때마다 인위적으로 넣은 것으로 판단된다. 문화재청은 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숭례문을 원형대로 복원할지, 원형은 발굴 상태로 보존하고 소실되기 직전의 모습대로 복원할지 정비방안을 재검토할 방침이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