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정원교] 안보 장사냐, 평화 장사냐
입력 2010-06-30 17:54
“지도자는 100년만에 닥칠 위기에도 대비해야 한다…불행한 역사 반복돼서야”
그해 6월도 이렇게 온통 초록빛이었을까. 들판을 덮은 벼나 야산의 나무 어느 하나 무성하지 않은 게 없는 계절. 고향 마을 풍경도 지금쯤 이랬었지. 들판에 사뿐히 내려앉거나 가벼운 날갯짓으로 어디론가 날아가곤 하는 왜가리들도 마찬가지였다. 왜가리 떼가 논에서 먹이를 찾거나 졸고 있는 모습은 우리에게 얼마나 느긋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줬던가. 그나저나 저 새들이 사람들은 이곳을 마음대로 오갈 수 없다는 걸 알기나 할까.
지지난주 제3땅굴을 다녀왔다. 남북한 대치 상황을 궁금해하는 외국 손님이 없었다면 생각해내지 못했을 곳이었다. 6·25전쟁 60주년이어서 그랬을까. 임진각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통일대교와 통일촌을 지나 땅굴로 향하는 동안 상념은 끝없이 이어졌다. 민간인출입통제선 안에 있는 통일촌 사람들이 가꾼 논의 벼는 왜 그리도 잘 자랐는지. 버스가 다니는 길 옆 야산에는 간혹 ‘지뢰(MINE)’라고 쓴 팻말이 보인다.
제3땅굴은 판문점에서 남쪽으로 4㎞ 떨어진 비무장지대(DMZ) 내에 있었다. 행정구역상 위치는 파주로 서울에서 불과 52㎞ 떨어졌을 뿐이다. 시간당 병력 3만 명가량을 이동시킬 수 있다는 이 땅굴을 북한군이 뚫던 중 발각된 게 1978년이었다. 그 뒤에도 지금까지 북한은 바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머리가 무거워졌다.
방문객들을 위한 홍보관 입구에는 추념의 불이 설치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동족상잔(同族相殘) 3년 1개월 동안 발생한 사상자 600만 명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10여 년 전 취재차 공동경비구역(JSA)에 간 적이 있지만 그때와는 느낌이 또 달랐다. 동행한 손님은 땅굴에 들어갔다 나온 뒤 눈이 둥그레졌다. 그러면서 한국은 ‘독특한(unique) 나라’라고 했다.
부연 설명은 이랬다. 우선 남북이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도 대단한 경제 발전을 이루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천안함 폭침 같은 북한의 대남 도발을 놓고도 국회에서 여야가 대립하는 걸 보면 이해가 잘 안 된다고 했다. 미국 상하원과 유럽의회도 이미 북한 규탄 결의안을 채택하지 않았느냐면서. 한국에서 지낸 기간이 길지 않은데도 우리 현실을 이렇게 콕 집어낼 줄이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를 놓고 정치권의 주장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이 적절한 조치였다고 하면 민주당은 실익도 타당성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민주당은 소위 ‘군사주권’을 포기한 무책임한 처사라고 몰아붙인다. 한국군이 전작권을 넘겨받는 시기를 늦췄다고 해서 우리 안보가 완벽하게 보장되는 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전작권 환수 연기가 전쟁억지력을 약화시키기라도 하는 것일까.
지금 당장은 부족한 정보 획득이나 정밀 타격 그리고 전쟁 지휘 능력을 보강하는 동안 전작권 행사를 늦추자는 것인데 주권만 앞세워 해결될 일인가. ‘2012년 전작권 전환’ 문서에 직접 서명한 전 국방장관이 “아직은 물리적인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밝히는 데 대해선 민주당이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다.
민주당이 그토록 자주국방을 내세우면서 ‘천안함 사건 대북 규탄 결의안’에 반대한 건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같은 모순도 없다. 민주당은 툭하면 한나라당이 전쟁 위험을 과장해 ‘안보 장사’를 한다고 빈정거린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지난 6·2 지방선거 때 재미 좀 본 ‘평화 장사’를 계속하겠다는 속셈인지 모르겠다. 천암함 침몰 이후 우리 사회에는 전쟁 날까 걱정하는 기류가 분명 있었다. 지방선거 당시 20대의 투표 성향에도 이 같은 분위기는 일정 부분 반영됐다.
그렇다면 이처럼 느슨해진 안보의식을 걱정해야 하는 것일까, 여기에 편승해야 하는 것일까. 임란 전 일본의 내침 가능성을 애써 무시한 당시 동인 서인으로 나뉘어졌던 조정이 새삼 떠오른다. 지도자라면 100년에 한 번 닥칠 안보 위기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안타까운 역사가 반복되도록 내버려두는 무책임한 조상이 돼서야 되겠는가.
정원교 편집국 부국장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