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전석운] 아동 성범죄 막으려면

입력 2010-06-30 17:51


조두순, 김길태, 김수철…. 이름만 바꿔서 나타나는 아동성폭행범들이 우리 사회를 들쑤셔놓고 있다. 김수철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서울 동대문구 주택가에서 놀던 7세 여아가 대낮에 집에서 성폭행당했다. 3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용의자는 사건 발생 닷새가 지나도록 잡히지 않고 있다. 어린 딸을 둔 부모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성폭행은 다른 신체적 폭력보다 정신적 상처를 더 오래 남긴다. 아동성폭행은 심리적 상처뿐 아니라 두뇌 발달 자체에 악영향을 미쳐 후유증이 평생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연세대의대 신의진 교수). 그래서 성폭행을 ‘영혼 살인’(Soul Murder)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나영이(가명) 아버지는 나영이가 얼마나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렸는지 생생하게 증언했다. 그는 김수철 피해자의 아버지를 만나 위로하면서 장기가 훼손돼 4차례 수술을 받은 나영이가 “12시간 동안 데굴데굴 구른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얘진 딸이 ‘아빠 나 좀 살려줘’라고 호소하는데 고통을 혼자 견디도록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동성폭행범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자 대법원은 양형기준을 상향 조정했다. 정부와 한나라당도 회의를 갖고 아동안전지킴이, 성범죄자 신상공개 확대, 우범자 관리 강화 등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대법원은 13세 미만 아동강간의 기본 양형을 5∼7년에서 7∼10년으로 올렸지만 외국에 비하면 약하다. 미국 플로리다의 경우 12세 미만 어린이를 상대로 한 성폭행범에게는 최소 25년 이상을 선고하도록 하고 있다(제시카 런스포드 법).

여성가족부와 교육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대책들은 구조적인 문제를 진단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내놓기보다 임시방편에 그친 것들이 많다. 이를 반증하는 사건들이 잇따라 불거졌다. 제주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50대 직원이 여고생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났고 울산의 초등학교에서는 장애 여학생이 또래들에게 성폭행당한 일이 밝혀졌다. 학교장과 담임교사는 쉬쉬하거나 축소보고했다.

아동성폭행 사건은 보도된 것보다 훨씬 많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5월말까지 345건이 발생했다. 매일 평균 2명 이상의 어린이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얘기다. 지금도 어디선가 공포에 질린 어린이들이 학교 안팎에서, 골목이나, 놀이터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을지 모른다.

정부는 언론에 부각되는 일부 사건만 쫓지 말고 근원적인 처방을 모색해야 한다. 사후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도 방법이지만 무엇보다 예방조치를 강화해야 한다. 늘어나는 아동성폭행 사건의 실태와 원인을 분석하고 성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은 어린이를 미리 구조해야 한다.

아동성폭행 가해자들은 성적(性的) 좌절을 겪었거나 왜곡된 성적 가치관을 갖는 경우가 많다. 학교뿐 아니라 직장교육이나 예비군훈련에서도 성폭행의 폐해를 알리고 예방 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가출청소년들이나 결손가정, 다문화가정 등 성폭행에 노출될 우려가 많은 잠재적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 마련도 시급하다. 가해자의 60%가 친족이나 보호자라는 조사도 있다. 성적 학대를 일삼는 부모나 보호자는 더 이상 아이를 키우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수사매뉴얼도 하루 빨리 정립해야 한다. 서울 영등포경찰서의 경우 장기가 훼손돼 피를 흘리는 아이를 병원으로 옮기는 대신 범인을 잡는다며 이리저리 데리고 다녔다. 수사 착수부터 전문가를 참여시켜 피해아동의 신속한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피해자 조사 방식도 바꿔야 한다. 범죄사실을 반복적으로 묻는 것은 성폭행 기억을 각인시키는 또 다른 폭력이다. 범죄피해자보호법상 장해구조금은 대폭 올려야 한다. 현행 규정은 장해등급에 따라 고작 300만∼1500만원이다. 국가가 제대로 보호하지 못해 짓밟힌 어린 아이의 상처를 감싸안기에 너무 인색하지 않은가.

전석운 사회부 차장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