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연재소설 묶어 ‘강남몽(江南夢)’ 펴낸 황석영

입력 2010-06-30 17:57

“한국 자본주의 근대화의 그늘과 상처를 다뤘습니다. 현재 우리 삶의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썼지요.”

소설가 황석영(67·사진)씨가 지난해 9월부터 8개월간 인터넷에 연재했던 소설을 묶은 장편 ‘강남몽(江南夢)’을 펴냈다. 소설은 1500여명의 사상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발생한 1995년 6월을 현재 시점으로 삼아 수십년에 걸친 남한 자본주의 근대화의 숨 가쁜 여정을 담고 있다.

30일 서울역사박물관 내 음식점에서 만난 황씨는 “삼풍백화점 붕괴는 멈출 줄 모르고 질주해 온 개발시대의 욕망과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소설은 3·1운동 직후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과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들춰낸다. 서로 얽히고설키는 수많은 인물 군상을 맞물려 ‘강남’으로 상징되는 남한 자본주의의 어두운 일면을 파헤친다.

일제의 밀정에서 해방 후 미 정보국 요원을 거쳐 기업가로 성공가도를 달리다 백화점 붕괴로 몰락한 김진, 시골 여상을 졸업한 후 고급 요정을 거쳐 김진의 후처가 됐지만 백화점 잔해에 묻히는 박선녀, 70년대 강남 개발 당시 부동산 사기로 많은 돈을 번 심남수, 거기에 기생하는 조직폭력배 등의 이야기는 남한 자본주의 형성사의 단면을 예리하게 저며낸다.

황씨는 “강남 형성사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게 몇 십년은 됐다. 자유롭게 쓰고 싶어 슬그머니 뒤로 제쳐놓았던 주제인데 이번에 캐릭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연결시켜가는 꼭두각시놀음 형식으로 소설을 내놓게 됐다”고 설명했다.

삼풍백화점 붕괴를 기준 시점으로 잡은 이유에 대해 그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차례로 무너지던 95년 무렵은 정치적으로는 형식적 민주주의 시대의 출발이었고, 경제적으로는 개발독재가 종언을 고하면서 한국 자본주의가 스스로 재생산 구조를 갖춘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의 80%가 팩트(fact)”라며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중립적으로 쓰려고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등에서 지난 4∼5년 사이 많은 자료가 공개됐어요. 정치적 판단을 하지 않고 자료에 근거해 등장인물을 그렸습니다. 박정희의 근대화 꿈과 현실이 어떻게 어긋나고 일그러져 가는 가를 그린 부분에 그런 입장들이 잘 나타나 있지요.”

작가는 “근대화 과정 어디나 상처와 그늘이 있다”면서 “근대화는 정치인이나 권력자들만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함께 땀 흘리며 이뤄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와중에 속도에 꺾이고 부러지고, 구멍 난 것을 대충 두드려 때우고 넘어왔던 것을 되돌아본 것이 이번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트위터를 통해서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그는 “우리 사회의 중추인 넥타이맨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사회가 바뀌려면 그들이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