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 국내여행 여름캠페인] (上) ‘남해 바래길’로 떠나는 생태관광
입력 2010-06-30 17:42
아낙들 조개 캐러 가던 길… 생명이 펄떡이고 있었네
한국관광공사는 지난해에 이어 11개 유관기관과 공동으로 여름 국내여행 활성화 캠페인을 전개한다. 이 캠페인에는 문화체육관광부, 행정안전부, 국토해양부, 농림수산식품부, 환경부, 산림청, 국립공원관리공단,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 한국농어촌공사, 한국철도공사, 해양환경관리공단이 공동으로 참여한다. 관광공사와 참여 기관은 여름철 국내여행수요를 촉진하기 위해 기관별 국내여행 테마를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콘텐츠를 제공한다. 올해는 자연과 하나 되는 녹색 관광을 주테마로 오토캠핑, 국립공원 생태관광, 농산어촌체험프로그램, 다양한 숲체험 프로그램, 갯벌생태관광, 친환경 기차여행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국내여행 테마를 3회에 걸쳐 소개한다.
바닷물이 빠질 때 드러난 갯벌이나 바위틈에서 해산물과 해초류 등을 채취하는 일을 남해 토속말로 ‘바래’라고 한다. ‘남해 바래길’은 남해의 어머니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썰물 때 소쿠리와 호미를 들고 갯벌로 나가 조개 등을 채취해 오던 길을 말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로 선정한 남해 바래길은 4개 코스에 55㎞. 아직은 안내판도 없는 거친 길이지만 그곳에는 남해 사람들의 고단했던 삶의 흔적이 짙게 배어있다. 제1코스는 ‘다랭이 지겟길’로 남해군 남면의 평산항에서 사촌해수욕장을 거쳐 가천다랭이마을로 이어지는 16㎞의 해안도로. 이곳에서는 요즘도 지게를 지고 가는 촌로를 쉽게 만날 수 있다. 급경사의 산비탈을 깎아 만든 밭에서는 경운기 등 농기계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랭이 지갯길은 설흘산(481m)과 응봉산(412m)이 만나 바다로 흘러내리는 급경사의 중간쯤에 위치한 가천다랭이마을에서 절정을 이룬다. 주민들은 농토를 한 뼘이라도 더 넓히려고 산비탈을 깎고 석축을 쌓아 계단식 다랑논을 일궜다. 석축 쌓기가 얼마나 힘들었던지 평생 두 마지기 정도의 다랑논을 만들고 나면 허리가 버들가지처럼 휜다고 한다. 이렇게 만든 다랑논이 바닷가에서 설흘산 8부능선까지 100층이 넘도록 촘촘한 등고선을 그린다.
고려시대에 적량에서 군마를 사육해 ‘말발굽길’로 명명된 제2코스는 지족어촌체험마을에서 창선교를 건너 추섬공원∼모상개해수욕장∼장포항∼적량해비치마을에 이르는 15㎞. 남해도와 창선도 사이의 지족해협에 설치된 20여개의 죽방렴이 장관을 연출한다. 지난 3월 문화재청으로부터 명승지로 지정 예고된 죽방렴은 참나무로 만든 말목을 개펄에 박고 주렴처럼 엮어 만든 대나무발을 조류가 흘러오는 방향을 향해 V자형으로 벌려 고기를 잡는 원시어업의 일종.
물살이 빠른 지족해협의 생선은 육질이 쫄깃쫄깃해 남해안 최고의 횟감으로 통한다. 특히 이곳에서 생산된 남해죽방멸치는 은빛 색상을 자랑하는 명품으로 남해마늘, 남해창선고사리와 함께 남해의 맛을 대표한다. 창선교 부근에는 죽방렴에서 잡은 멸치로 조림을 해 쌈을 싸먹는 멸치쌈밥집이 몇 곳 있다.
창선면 동쪽에 위치한 적량해비치마을은 생태체험으로 유명한 아담한 포구. 적량성에 햇살이 비치면 붉게 보인다고 해서 해비치(赤梁)로 불린다. 120가구에 주민이 260여명인 적량해비치마을은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70%. 마을 사무장인 김우섭(70)씨는 “일흔살은 감히 노인정 출입도 못할 정도로 젊은 편이다”고 말한다.
국사봉 자락에 포근하게 안긴 적향해비치마을은 아담하고 깨끗해 유럽의 작은 마을을 보는 듯하다. 세종 때 축성해 한일합병 이전까지 수군기지 역할을 했던 적량성은 마을 안에 위치한다. 거대한 돌을 쌓아 만든 성은 대부분 주택의 축대로 사용돼 흔적만 남아있고 성벽이 온전한 200m는 성안마을과 성밖마을의 담으로 이용되고 있다.
적량해비치마을 앞바다는 천혜의 홍합 양식장. 워낙 청정지역이라 이곳에서 채취한 홍합은 여름철에도 비브리오균이 없단다. 홍합은 요즘이 제철. 마을 주민들은 체험객들과 함께 배를 타고 나가 홍합을 채취한다. 국사봉에서 채취한 고사리와 말린 홍합을 넣어 조리한 홍합비빔밥과 홍합전은 이곳에서나 맛볼 수 있는 별미.
이밖에도 적량해비치마을에서는 나전칠기 제작, 뗏목낚시, 마을길 걷기 등 소박하면서도 다채로운 체험거리를 운영하고 있다. 봄에는 고사리 수확, 가을에는 전어잡기 등 계절별로 특화된 체험거리도 다양하다. 10여가구의 민박집에서 투숙할 수 있는 인원은 130여명.
남해 바래길 제3코스는 적량해비치마을에서 공룡발자국화석∼고사리밭∼동대만 갯벌∼창선방조제 갈대밭∼동대만휴게소로 이어지는 14㎞ 길이의 고사리밭길. 국사봉 자락에 고사리가 많아 고사리밭길로 명명됐다.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길은 없지만 산과 바다, 그리고 갯마을이 어우러져 정겹다.
창선면 가인리 해안은 공룡발자국 화석지로 이름 높다.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 시절에 이곳은 바다 건너 고성과 함께 공룡들의 놀이터였다. 오랜 세월 파도에 닳아 반들반들한 암반에는 크고 작은 공룡들의 발자국 100여개가 선명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중형 용각류가 남긴 22개의 발자국으로 발길이가 55㎝에 이르는 대형이다.
바다풀인 진지리가 많아 ‘동대만 진지리길’로 명명된 제4코스는 동대만휴게소∼곤유마을∼당항∼냉천어촌체험마을∼창선대교타운∼창선·삼천포대교에 이르는 10㎞ 길이의 77번 국도.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한 동대만 갯벌에서 해산물을 채취한 남해의 아낙들이 함지박을 끌거나 머리에 이고 갯벌을 걸어 나오는 고단하면서도 정겨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육지의 논과 바다의 갯벌이 맞닿은 반농반어의 곤유마을을 지나면 갯벌체험으로 유명한 냉천마을이다.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갯벌체험장에서는 키조개 쏙 등 조개류를 채취할 수 있다. 드넓은 갯벌에서 가족과 함께 조개를 채취하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 나비처럼 날개를 활짝 펼친 형상의 남해를 보물섬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남해=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