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약국(61)

입력 2010-06-30 15:53

이창동의 영화 ‘詩’

영화 ‘詩’는 윤정희라는 배우가 열연한 작품이다. 프랑스의 칸 영화제에서 이러저러한 극찬을 받은 작품 중 하나라고도 한다.

노년에 든 여주인공이 시를 배우기 시작하여 시를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가 영화의 줄거리다. 영화 속 여주인공은 어느 날, 자신의 머릿속에서 ‘名辭’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를테면, 강아지, 태수, 숟가락, 밥, 돈, 명예 같은 단어들이 생각나지 않는 거였다. 그 대신 부사와 형용사 그리고 동사만 그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밥 줘’ ‘싫어’ ‘누가 나를 때렸어’ 같은 문장들이다.

치매는 ‘명사’를 버리고 ‘부사’와 ‘형용사’ 그리고 ‘동사’들만을 기억하는 삶의 장치라고 한다. 사람이 이 땅에 살 때는 가장 많이 명사를 쓰지만, 이 땅을 떠날 때가 되면 하나씩 둘씩 수많은 이름씨들을 버리고 삶의 한 부분이 되었던 형용사 부사 동사들만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작 우리는 가장 별 볼 일 없는 ‘이름’만 나열하며 사는 셈이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명사의 삶을 사는 사람은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뜻도 되겠다. 명사는 주로 잘난 사람들, 지식인이 소유다. 못 난 사람들, 배우지 않은 사람들의 말은 거칠다. ‘거칠다’는 것은 동사거나 형용사다.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면, 삶이 부유하려면 가급적 명사는 삼가고 형용사와 동사 그리고 감탄사로 사는 게 좋다. 이창동의 영화는 이걸 암시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목사의 설교도, 이 땅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도 영화 ‘시’가 주는 의미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눅 11:27)

<춘천성암감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