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 인터뷰… “줄세우기 수단인 일제고사 횟수 줄일 것”
입력 2010-06-30 00:15
첫 진보 성향 서울시교육감 당선자가 그리는 서울 교육의 모습은 어떠할까.
곽노현(56) 서울시교육감 당선자는 29일 가진 인터뷰 내내 시민과 학생·학부모의 ‘참여’를 강조했다. 교육 비리를 없애고, 질 높은 공교육을 만들기 위해선 이들의 참여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곽 당선자는 “(임기가 끝나는 4년 후) 학교를 민주주의와 인권의 체험학습장으로 만든 교육감, 공교육의 새 표준을 정립한 교육감으로 평가받았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당선 이후 서울시교육청 간부들로부터 업무보고 등을 받으면서 시교육청의 문화나 분위기를 어떻게 느꼈나. 교육청 조직 개편에 대한 견해는.
“시교육청 소속 공무원들은 서울시내의 많은 교사, 공무원 가운데 뽑힌 사람들인 만큼 정말 우수한 인력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관료주의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교육청은 공복(公僕)의 조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열린 투명행정, 민관 협치가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 교사와 학부모, 학생 외에도 일반 지역주민들까지 참여하는 협치가 이뤄져야 한다. 시교육청에는 서울교육발전협의회 등 맹아적 조직들이 있다. 이것을 보다 확대하고, 권한을 실질화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참여를 강조하면) 시민사회단체 등을 떠올릴 텐데 이런 ‘조직된 시민’ 외에도 좋은 의견과 경험을 갖고 있는 시민이 많이 있다. 이런 분들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
-인사 비리로 시끄러웠다.
“‘성호사설’에는 당쟁의 원인이 하나라고 했다. 자리는 적고 사람은 많다는 것이다. 인사를 둘러싼 잡음을 없애려면 누가 봐도 ‘(그 자리에) 갈 만한 사람이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도록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방법을 조합해 활용하겠다. 정말 중요한 자리에 대해서는 시민 공개 검증도 실시할 수 있다. 인사위원회의 과반수 위원을 외부 인사로 참여시키겠다. 상호 보완적인 여러 가지 제도를 활용하겠다. 어느 한 가지 방법만 쓰는 것은 대증요법 또는 포퓰리즘 요소를 동반할 수 있다.”
-최근 학생이나 학부모로부터 막말을 듣거나 심지어 학교에서 폭행을 당한 교사도 늘어나는 등 교사 인권이 추락했다는 얘기가 많다.
“교사 권위가 서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봐야 한다. 지금 교사 권위를 앗아가는 게 뭔가. 내가 보기엔 과도한 입시경쟁, 이로 인한 문제풀이 방식의 수업 때문이다. 공교육이 사교육에 뒤처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교사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이들 중 과반수가 엎드려 자는 교실에서 수업하는 교사 심정을,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공부는 하지 않고 멍하게 앉아 있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사의 비애를 생각해 봐라. 이런 상황에서 교사 권위가 설 수 있겠나. 교권헌장을 만들겠다. 아울러 비합리적인 승진 제도도 문제다. 교장, 교감이 되기 위해 0.1점에 목을 매야 하는 상황에서는 권위가 생길 수 없다.”
-교원 승진 제도까지 바꿀 의향이 있는가.
“교사의 권위를 좀먹는 것 중 하나가 교장, 교감이 되기 위해 0.1점짜리 점수, 가산점에 목을 매야 하는 비합리적인 승진 제도다. 일선 교사들은 교장이 되기 위해 오랫동안 스펙 관리를 한다. 하지만 교장, 교감이 되는 게 승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장, 교감은 서비스직이다. 그런데 현재는 이 자리가 교사들 위에 군림하는 자리가 돼 있다. 지금의 근무성적 평정 제도에서는 교사가 20년 넘게 교장에게 잘 보여야 한다. 취임하면 이런 부분에 대해 본격적이고 치밀한 작업을 추진할 것이다.”
-다음달 13일 전국적으로 치러지는 학업성취도평가를 앞두고 당선자가 정부와 마찰을 빚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있다.
“(학업성취도평가를 실시해)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가려내 이들에게 처방을 제시하는 것은 공교육의 기본 책무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학업성취도평가의 이러한 취지가 변질돼 있다. 학교 간 경쟁, 교장 간 경쟁이 벌어지고 학교 줄 세우기 수단으로 활용된다. 아이들은 들들 볶이고 있다. 시험에 나오는 과목만 공부하고, 문제풀이식 수업이 이뤄지는 파행이 벌어지고 있다. 부정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국가 수준의 학업성취도평가는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소관인 만큼 교육감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시·도별로 치러지는 진단평가는 어떻게 되나.
“교육감 권한인 진단평가의 경우 줄여야 한다. 완전 폐지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학업성취도평가와 같은 파행이 벌어지고 있다면 학생, 학부모의 (시험) 선택권을 존중하는 것을 넘어 과감히 줄여야 한다. 그렇다고 진단평가를 완전히 없애겠다는 것은 아니다.”
-교원평가제는 어떻게 진행돼야 하나.
“지금의 교원평가제는 교사를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불만의 희생양으로 만들기 쉬운 방식이다. 이미 시행된 교원평가제에 대해서는 실사구시적으로 접근해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 기본 방향은 보여주기식 평가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학생만이 교사의 수업을 직접적이고 계속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학생 중심으로 가야 한다. 학부모가 교사를 평가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내가 학부모라도 못한다. 동료교사 평가도 마찬가지다. 교사들이 서로 수업을 평가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어렵다. ‘수업할 테니 와서 한 번 봐라’는 식의 보여주기식 평가밖에 안 된다. 대신 동료교사들끼리 교과 연구모임을 만들어 활성화할 수 있도록 돕겠다.”
-학생 인권조례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인권조례 제정은 학생 생활지도 방식의 혁명, 공교육의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를 만드는 것이다. 학생 인권 보장은 너무나 당연한 거다. 많은 분들이 조례가 제정될 경우 학생들이 주장할 집회·결사의 자유를 걱정한다. 학생들이 집회를 벌이면 학생들 역시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회·결사의 자유가 존중돼야 하는 것은 이것이 인권의 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의견을 개진할 자유는 ‘생각하는 갈대’인 인간의 고유 권한이다. 학생들이 집회를 벌일 것을 걱정하지 말고 교육 현장의 ‘언로의 경색’을 걱정하는 게 우선이다.”
-혁신학교에 대한 관심도 많다.
“내년부터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역을 대상으로 곧바로 지정한다. 이미 시의회와 구청 측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초·중·고교 가운데 중학교를 중심으로 지정할 것이다. 중학교 시기가 사춘기와 질풍노도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지정되는 학교당 2억원씩 지원한다.”
모규엽 박지훈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