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반값 세일’ 문구 못 쓴다
입력 2010-06-29 18:10
7월1일부터 권장소비자가격 표시 금지 품목 279종으로 확대
다음달 1일부터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 반값 세일’이라는 문구를 볼 수 없게 된다. 권장소비자가격 표시 금지 품목에 아이스크림을 비롯해 라면, 과자, 빙과류 등 가공식품 4종이 새로 포함됐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 유통물류과 관계자는 29일 “권장소비자가와 실제 판매가격 간 차이가 커서 소비자를 현혹할 우려가 있는 품목을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권장소비자가 표시 금지, 이른바 ‘오픈 프라이스제도’는 제조업체가 가격을 높게 설정한 뒤 할인해주는 것처럼 소비자를 호도하는 ‘무늬만 세일’을 없애기 위해 1999년 가전제품과 의류를 시작으로 처음 도입됐다. 판매가격을 제조업체가 아닌 유통업체가 정하도록 해 업체 간 가격경쟁을 유도한다는 취지도 담겼다. 해당 품목은 2000년 8월 22종, 2004년 9월 32종으로 확대된 데 이어 이번에 279종으로 늘었다.
권장소비자가 표시 금지 확대로 가장 큰 혼란이 예상되는 품목은 아이스크림이다. 아이스크림은 대형마트에선 ‘묶음 판매’로, 동네슈퍼에선 1년 내내 ‘반값 세일’이 진행돼 권장소비자가라는 말 자체가 무색하다.
상인들은 “우리도 잘한 건 없지만 그동안 대리점에서 ‘밀어내는’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싸게 사들여 할인행사하면서 먹고 살았는데 이제 기준 가격 자체가 없으니 ‘다른 집은 얼마에 파나’ 눈치만 보게 생겼다”고 푸념했다.
중소 슈퍼마켓 주인들은 대부분 권장소비자가 표시 금지 확대로 결국 손해만 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 여의도동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김대철(56)씨는 “바코드 기기가 없어 일일이 가격을 붙여야 하는데 그 많은 품목을 붙이자니 번거롭고 그렇다고 기기를 사자니 300만원 가격이 부담스럽다”며 “지금도 소비자들은 가격에 대해 신뢰를 하지 못하는데 소비자가격이 명시되지 않으면 큰 혼란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임원배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대외협력단장은 “오픈 프라이스제가 시행되면 가격 협상력이 있는 대형마트는 싼값에 물건을 사들여 싸게 팔고 힘이 없는 영세업체들은 그러지 못해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 반응은 엇갈렸다. 회사원 김모(51)씨는 “유통업체마다 부르는 게 값일 텐데 일일이 가격을 확인하지 않는 한 물건을 살 때마다 ‘바가지 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봉훈(29)씨는 “마트나 슈퍼마켓끼리 경쟁하면 가격이 떨어져 결국 소비자한테는 좋은 일 아니냐”고 반겼다.
전문가들은 오픈 프라이스제가 ‘양날의 칼’인 만큼 현명한 소비자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오픈 프라이스제 시행으로 가격이 불안정해지면 유통채널별로 경쟁이 촉진돼 가격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바잉파워를 지닌 몇몇 대형마트 간 담합으로 오히려 가격이 올라가는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쇼핑에 나서기 전 가격을 꼼꼼히 비교하고 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김소라 김지윤 대학생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