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인강 (22) 힘들던 학창시절 ‘골목길…’ 詩 암송하며 마음 추스려

입력 2010-06-29 18:23


“골목길이 끝나고/도로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그곳에/풀들이 자라는 곳이 있다/그곳에는 태양이 밝은 진홍색으로 빛나고/그곳에는 달새가 날개를 쉬면서/박하향 나는 바람에 머리를 식히고 있다/

우리 이곳을 떠나자/검은색 연기가 불어오는 곳/검은색 도로만이 이리저리 뻗어있는 곳/아스팔트 외엔 더 이상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웅덩이들을 지나/우리 아주 천천히 신중한 걸음걸이로/흰색 화살표를 따라가 보자/골목길이 끝나는 그곳으로/그래 우리 아주 천천히 신중한 걸음걸이로/흰색 화살표를 따라가는 거야/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그 화살표를/그리고 아이들은 알고 있지/골목길이 끝나는 곳에 있는 그 장소를.”(골목길이 끝나는 곳 중에서)

학창시절에 읽은 셸 실버스타인의 시집 ‘골목길이 끝나는 곳’을 아직도 좋아한다. 그땐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지만 가슴을 뜨겁게 했던 작품이다.

골목길이 끝나는 곳은 늘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어린시절 놀았던 장소는 놀이터가 아니었다.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 골목길이 끝나는 곳은 막다른 골목이거나, 혹은 큰길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언제나 멈춰 서서 전후좌우를 살펴야 했다. 왜 그는 우리를 골목길이 끝나는 곳으로 불렀을까? 그리고 골목길을 노래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나는 서울 행운동에 있는 예수마을교회에 다닌다. 청년사역에 헌신하고 있는 이승장 목사님이 인도하는 이 교회의 청년부 집사로, 순장(셀장)으로 섬긴다.

서울대에서 고등과학원으로 자리를 옮기고 집도 청량리로 이사했지만 예배는 예수마을교회에서 드린다. 이 교회는 올해로 창립한 지 12년이 된 조그마한 교회다. 대학생과 신림동 고시촌 학생들이 많아 지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때문에 좀 더 열려 있고 누구나 와서 편히 예배드릴 수 있는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예전처럼 기독대학인회(ESF)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좀 아쉽다. 하지만 고등과학원에서도 성경공부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내 연구실 앞에는 중키의 나무들이 많다. 엊그제 파란 새싹의 봄빛이 완연하더니 어느새 신록이 무르익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빨간 진달래와 하얀 목련, 노란 개나리로 캠퍼스는 온통 봄꽃의 축제였다. 그사이를 오가는 이름모를 학생들. 나는 자주 캠퍼스를 홀로 거닌다. 공부하다 지치면, 생각하다 지치면 무작정 걷는다.

인생의 골목길마다 오고가는 학생들이 좀 더 나은 인생과 진리의 길로 인도되기를 나는 속으로 기도한다. 나는 지금 학자로, 아버지로, 남편으로, 투병 중인 노모의 아들로, 6남매의 막내로 해야 할 일이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감당해야 할 일이 많다. 바쁘다는 핑계로 내 속사람이 시들지 않도록, 매 순간이 내 인생의 전부인 양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나는 지금도 어디에서 살든지, 그가 노래하듯 그곳이 순수가 거하는 곳, 참 쉼이 있는 곳, 모든 것이 항상 새롭고, 신기하고, 즐거운 곳이 되기를, 새 하늘과 새 땅이 되기를 기도한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청년들에게 다니엘처럼 심지가 곧은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주문한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되는 공동체가 되도록 간구한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