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오 기자의 남아공 편지] 해외 언론인 “한국, 2002년 환상 깨야 더 성장”

입력 2010-06-28 17:57

세계는 한국축구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남아공에 머무른 지난 3주 간 경기장과 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세계 언론인들의 견해를 소개하겠습니다.

조별리그 1차전 그리스전때 기자석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남아공 출신 반 윅 그래드윈 기자는 한국축구를 꽤 오래 전부터 관찰해온 것 같았습니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을 뒤덮었던 붉은 물결과 대표팀의 4강 진출을 인상 깊게 봤다던 그는 “이제 붉은색을 보면 ‘레드엔츠’와 한국이 떠오른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알아보니 레드엔츠는 현지에서 가장 악명 높은 철거용역업체이기는 했습니다만 아프리카 최남단에서 붉은색이라는 상징으로 한국을 떠올린다는 점이 한국축구의 높아진 입지를 대신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브라질의 원로 언론인 오리시스 바티스타 나달씨도 이미 한국축구를 알고 있었다는 듯 “21세기 들어 더 빠르고 강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인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려면 더 노력해야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펠레(70)가 브라질에서 한국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가’를 물었더니 “직접 들은 적은 없다”면서도 “펠레가 어떤 사람인지 당신도 알지 않는가. 세계 최고의 선수였지만 말을 아껴야한다”고 재치 있게 답하더군요.

냉정한 현실을 깨닫게 만드는 순간도 있었죠. 17일 만난 아르헨티나 유명 방송국의 한 PD는 “우리 국민들은 19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에서 일부 편파판정과 일방적 응원 속에 조국의 우승을 일궈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한국도 2002년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더 성장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개최국으로서 한 차례 달성했던 성과를 잊지 못한 채 점진적 발전을 꾀하지 않는다면 세계 수준에 오를 수 없다는 애정 어린 충고였죠. 한국은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달성하며 한 단계 성장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4강을 넘어 우승국에 이름을 올릴 날이 오겠지만 우선은 한 계단씩 올라가야합니다. 4년 뒤 또 한 번의 성장을 기대합니다.

포트엘리자베스=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