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박강섭] 보복 당하는 지역축제

입력 2010-06-28 17:58


소규조수(蕭規曹隨)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소하(蕭何)가 제정한 법규를 조참(曹參)이 따른다’는 뜻으로 전임자의 정책을 충실히 계승하는 것을 말한다. 소하와 조참은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일등공신이었다. 먼저 승상이 된 소하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백성을 어루만져주는 법률을 제정하는 등 개국의 기틀을 다졌다.

소하가 죽자 후임 승상에 오른 조참은 전임자가 닦아놓은 틀을 답습했다. 그는 자신의 색깔을 내기보다 상처받은 민심을 치유하는 데 더욱 힘썼다. 그 결과 한나라는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불세출의 제왕 한무제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자치단체장들의 취임을 앞두고 지방관가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특히 여당에서 야당으로 수장이 바뀐 일부 지자체의 경우 인수위가 점령군 행세를 하는 등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해 공무원들을 허탈하게 했다. 또 당선자가 현 단체장의 인사정책과 정책방향을 부정하면서 대대적 개편을 예고해 공무원 사회가 좌불안석이라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자치단체장을 흔히 소통령(小統領)이라고 부른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민선 5기에 당선된 일부 단체장들이 그 권력을 이용해 전임자의 정책에 사망선고를 내리고 있다. 바뀐 단체장들이 가장 먼저 손을 보고 싶어 하는 정책의 중심에 지역축제가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분야인데다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데 축제만큼 매력적인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새로 선출된 단체장은 전임자의 치적으로 평가받는 축제를 폐지하거나 축소하고 자신의 축제를 만들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이런 일은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이 대거 여당에서 야당으로 바뀐 충청지역에서 두드러진다. 대충청방문의해를 6개월 남기고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당선자들은 오랫동안 지역의 얼굴 역할을 해온 축제를 취소하거나 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대로 충주시장 당선자는 유명무실한 충주세계무술축제를 같은 당 소속의 충북지사 당선자가 충주시장 시절에 만들었다는 이유로 화려하게 부활시키기로 했다.

물론 뚜렷한 성과도 없는 전시성 행사는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전임자의 정책을 폄하하기 위해 잘나가는 축제까지 손보아야 할까. 문제점이 있다면 지속적으로 개선하거나 보완하면 될 일이지 함부로 폐지하거나 축소할 일은 아니다. 한나라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데는 전임자의 정책 계승을 거부한 것도 작용했다.

4년 전의 일이다. 관광도시로 유명한 경북 지역의 모 시장은 취임하자마자 그 지자체의 얼굴과 다름없는 축제를 축소했다. 선거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전임 시장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축제였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다. 그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축제 담당공무원도 한꺼번에 교체했다. 업무 성격상 전임 시장과 가까운 관계에 있던 공무원들에 대한 일종의 보복인사였다. 결과는 축제와 관광이 위축되고 지역민들의 관광수입 감소로 이어졌다. 뒤늦게 축제 규모를 원래대로 복원하는 등 부산을 떨었지만 이미 버스는 출발하고 난 후였다.

반면에 물러나는 김태호 경남지사의 치적으로 평가받는 ‘이순신 프로젝트’에 부정적이었던 경남지사 인수위는 최근 담당공무원을 불러 추진 경위 등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하도록 격려를 했다는 후문이다. 덕분에 거북선을 인양하기 위한 해저탐사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전임자의 정책이라도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는 사업은 계승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인식의 발로이다.

비록 전임자와 소속정당이 다르고 선거과정에서 날선 공방을 벌였더라도 지역발전을 위한 정책을 편다면 4년 후 후임자에 의해 자신의 정책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폐기되는 전철을 밟지는 않을 것이다.

박강섭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