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환 불응하며 결백 외치는 韓 전 총리
입력 2010-06-28 17:58
법은 만인(萬人)에 공평해야 한다. 이 원칙이 훼손되면 민주주의 뼈대를 이루는 법치(法治)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억울하다고 해서 정해진 법 절차를 무시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런저런 비리 의혹이 본인의 결백 주장만으로 덮어지면 검찰은 왜 있고, 법원은 또 왜 필요한가.
건설업자로부터 9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가 어제 검찰 소환에 불응했다. 두 번째다. 그리곤 농성을 계속했다. 그는 그제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무기한 농성에 들어가면서 “검찰의 부당한 수사에 결코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번 ‘9억원 사건’ 수사는 지난번 ‘5만 달러 사건’ 무죄판결에 대한 보복 수사로, 한명숙 정치생명 죽이기라는 이유에서다.
검찰이 야당 정치인 비리 의혹 사건을 수사할라치면 야당과 당사자가 제기하는 단골 메뉴가 정치보복, 표적수사 주장이다. 여론의 동정심에 기대 어떻게든 위기를 넘겨보려는 상투적 수법이다. 만에 하나 수사기관이 정치보복과 표적수사를 자행하면, 야당이나 당사자보다 국민이 먼저 가만있지 않는다. 민주당사를 농성장소로 택한 것도 썩 좋아 보이진 않는다. 민주당사는 결코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소도(蘇塗)가 될 수 없다. 민주당 보호막에 숨을 수도 없고, 숨는다고 해결될 사안도 아니다.
의혹 수사는 검찰 본연의 임무다. 검찰은 관련자를 조사해 기소 여부를 결정하고, 기소하더라도 유·무죄 판단은 법원의 몫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측근 비리와 관련해 검찰 조사에 응했다. 한 전 총리가 결백하다면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검찰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고, 거기에서 안 되면 법원의 판단을 받으면 그뿐이다. 법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한 전 총리 본인은 물론 민주당까지 입지가 좁아지게 된다.
법 절차를 존중하고 준수하는 건 국민의 당연한 의무다. 국무총리를 지내고, 서울시장까지 꿈꿨던 유력 정치인이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지금 한 전 총리가 있어야 할 곳은 민주당사가 아니다. 그리고 민주당은 그를 두둔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