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 (火) 관념의 길
입력 2010-06-28 17:33
찬양 :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90장(통98)
주기도문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13장 44절
말씀 : 1914년, 중국 푸젠(福建)성에서 한 아이가 출생합니다. 유난히도 바둑에 재능을 지닌 이 아이는 불과 대여섯 살부터 내기바둑으로 살림을 도울 정도로 바둑에 심취합니다. 어느 날 중국을 방문한 일본 바둑계의 프로기사와 대국을 하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장난삼아 한 수 두게 된 것인데 이게 웬일입니까? 몇 차례 거듭 두었음에도 프로는 이 아이를 한 번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천재소년 오청원은 일본으로 초청되어 일본 바둑계의 명인 슈사이와 두 점을 깔고 공식 테스트 대국을 두게 됩니다. 7일간 밤낮으로 일본 바둑계가 가지고 있는 고난도의 각종 수들을 동원했으나 결국 4점을 패하는 것으로 1차 대국이 끝나게 됩니다. 발칵 뒤집어진 일본의 바둑계는 오청원을 일본기원의 정식 멤버로 받아들이고, 바둑의 개혁을 시도합니다. 이로써 일본은 바둑의 종주국인 중국을 앞지르며 현대바둑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바둑은 첫 수를 어디에 두느냐가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 합니다. 이미 오랜 세월을 통해 첫 수를 두는 곳이 소목점이었으나, 오청원으로부터 시작된 또 다른 화점바둑 이후로는, 누구나 첫 수를 화점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화점이란, 바둑판 위의 9개 까만 점 중 귀퉁이의 네 점을 말하는 겁니다. 소목점을 시작으로 견고한 전략구조를 이루었던 오랜 전통의 공인된 최고의 전술은 오청원의 등장으로 사라진 것입니다.
소목점에서 화점까지의 거리는 물리적으로는 좁은 바둑판의 한 칸에 불과하지만, 고정관념이 만들어낸 거리는 수백 년이 걸렸습니다. 이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바둑이 주는 좋은 교훈이라 하겠습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둘 수 있는 첫 돌의 위치를 소목점이 아닌 화점으로 가져가는 그 길은 그동안의 고정된 생각이 흔들려야 갈 수 있는 좁은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주어도 가득 쥔 손으로는 받을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족한 것을 채워 나가는 성장과 가지고 있던 것을 털어내 비우고 새로 시작하는 성숙과는 사뭇 개념이 다른 것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춰진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는 말씀과 같이 일본 바둑계의 고수들도 상당한 갈등을 느꼈으리라 생각됩니다. 보화와 같은 어린 소년을 따라가야 하느냐 아니면 그대로 가던 길을 가야 하느냐? 이는 처음 보화를 발견하고 그동안의 모든 생각들이 흔들리던 우리의 모습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변화를 위해 흔들리는 경험은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그동안 소중히 여겨오던 것들을 버려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결단이 요구되는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던 믿음의 선진들도 이같이 쩔쩔매던 순간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방이 너무 밝은 것 같아 불을 잠시 껐다. 순간 깜짝 놀랐다. 내 방에 불을 끄자 창 밖에 어둠과 흰 눈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다. 내 안의 불을 끄고 나니 내 앞의 세상이 훨씬 잘 보였다.”
기도 : 예수 안에서 내 방에 밝은 불을 끄고 창 밖의 어둠을 보게 하소서.
주기도문
장현승 목사(과천소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