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월드컵] 울지마… 다음엔 무지개 뜰거야
입력 2010-06-27 18:18
남아공 월드컵 결산 (상) 한국축구 성과와 과제
세계 축구는 한국의 8강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국 축구는 성장했지만 많은 계단을 한꺼번에 올라가진 못했다.
◇16강 목표 달성, 한결 나아진 한국 축구=한국은 이번 대회 당초 목표인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뤘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그리스를 2대 0으로 이겼고, 2차전 아르헨티나전에서 1대 4로 완패했으나 3차전 나이지리아전 무승부(2대 2)로 16강 티켓을 따냈다(B조 2위·승점 4).
외국에서 월드컵만 하면 조별리그 탈락 짐을 들고, 고개 숙여 귀국했던 한국 축구의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었다. 남아공 16강 진출은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이 홈 어드밴티지 편파 판정으로 이뤄낸 성과라는 다른 나라들의 폄하를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한국 축구 글로벌화 성공이 최고 원동력=태극전사들이 강해진 가장 큰 이유는 한국 축구의 글로벌화에서 찾을 수 있다. 2002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 선수들의 해외 리그 진출이 8년 뒤 남아공에서 꽃을 피웠다.
2006 독일월드컵 당시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영표(당시 토트넘) 등 몇 명에 불과했던 유럽파 숫자가 허정무호에서 배가량 늘었다. 그리스·나이지리아·우루과이전 베스트 11 가운데 절반이 넘는 6명(박지성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이영표 차두리)이 현재 유럽에서 뛰고 있거나 과거 유럽 리그를 경험한 선수들이다.
경험은 경기력으로 나타난다. 한국이 남아공에서 치른 총 4경기 득점(6골) 중 유럽파가 3분의 2인 4골(이청용 2골·박주영 1골·박지성 1골)을 넣었다. 나머지 2골도 일본에서 활약하는 해외파 수비수 이정수(가시마)가 기록했다. 남아공에서 국내 K리거가 넣은 골은 없다.
◇국내파 허정무 감독이 이룬 성과=남아공월드컵은 내국인 축구 지도자들의 능력을 다시 조명해야 한다는 숙제를 남겼다. 2007년 12월 대표팀을 맡은 허 감독은 2년 반 만에 한국을 원정 월드컵 16강 국가로 올려놨다. 허 감독은 국내외 지도자(2006 독일월드컵 아드보카트 감독 포함) 가운데 처음으로 원정 월드컵 조별리그를 통과한 사령탑으로 기록됐다.
허 감독의 성과로 ‘내국인 지도자는 안 된다’는 대표팀 감독 선임을 둘러싼 기존 논란 구도는 어느 정도 힘을 잃게 됐다. 그러나 허 감독 이외 국내 지도자들이 세계 축구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지속적 자기 노력을 하지 않으면 남아공 16강 진출은 ‘좋았던 과거’로만 남을 수 있다.
◇다음 월드컵을 위해 준비해야 할 사항들=한국의 2014 브라질월드컵 목표는 자연스럽게 ‘8강 이상’으로 정해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형 수비수 육성이 절실하다. 견고한 수비 없이 월드컵 8강에 오르기는 힘들다.
허 감독은 우루과이전 패배 뒤 “이제 우리도 유럽 리그에서 뛰는 훌륭한 수비수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파 선수들의 공수 불균형이 개선돼야 한다는 의미다.
4년 뒤를 대비한 세대 교체도 필요하다. 이영표 김남일 이운재 이동국 안정환 등 30대 선수들은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월드컵이다. 2014년이면 한국 나이로 서른 네 살이 되는 박지성도 브라질월드컵에서 지금의 경기력을 보여준다는 보장이 없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낙오한다. 지금 세계 축구는 단순히 어느 나라가 나아졌느냐가 아닌 누가 더 빨리 그리고 더 확실하게 성장하느냐로 경쟁하고 있다.
포트엘리자베스=이용훈 기자 co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