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노석철] 한나라당 쇄신이 안 되는 이유

입력 2010-06-27 19:17

지난 4월 말 법원이 전교조 명단 공개를 금지했을 때 한나라당 의원들은 집단 ‘판결불복’ 운동을 펼쳤다. 명분은 전교조 교사들이 누구인지 학부모들이 알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휘발성이 강한 교육 이슈를 6·2 지방선거에 활용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비약하면 보수표 결집을 유도하기 위해 여당 의원들이 ‘법 무시’에 앞장선 것이다. 여기엔 당내 개혁파로 불리는 의원들까지 적극 가세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가 아닌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천안함 대국민 담화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천안함 사건은 명백한 북한의 도발이지만 ‘전쟁기념관 담화’는 무리라는 지적은 여당에서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한나라당은 안보이슈가 확산되자 희희낙락했다. 이윤성 의원은 “천안함 사건이 다행히 인천 앞바다에서 일어났다”고도 했다. 세종시와 4대강 문제에서도 여당 의원들은 민심을 외면하고 청와대의 확성기 노릇만 했다.

돌이켜보면 ‘전교조 때리기’는 오히려 진보 교육감 당선에 영향을 미쳤고, ‘전쟁기념관 담화’는 야당의 ‘전쟁과 평화론’에 되치기당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누구랄 것도 없이 여권 전체가 민심에 역주행했던 셈이다.

그런데 지방선거가 완패로 끝나자 한나라당의 비난은 청와대로 집중됐다. 진솔한 자기 반성문을 쓰는 의원은 거의 없었다. “내가 이념논쟁을 부추겼다” “내가 청와대 확성기 노릇을 했다”는 고백은 못 들어봤다.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을 바꿔야 한다고 했지만, 그건 대통령의 권한이어서 공허했다. 쇄신론은 곧 수그러들었다. 정몽준 대표가 사퇴를 해버리자 화살을 맞아줄 희생양이 없어진 탓도 있다.

그러나 뼈를 깎는 쇄신이 필요하다던 한나라당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구태가 반복되는 모습이다. 우선 선거책임론은 사라지고, 후보들마다 반성 없이 개혁의 적임자를 자처하고 있다.

일부는 앙숙관계인 후보의 표를 잠식하기 위해 보복성 출마를 한 의심도 든다. 정책과 비전은 뒤로하고 의원 줄세우기와 악성 루머, 돈선거 조짐까지 보인다. 오죽했으면 김무성 원내대표가 “밥 사기, 술 사기로 표를 얻으려는 돈선거는 안 된다”고 얘기했을까.

윗물은 여전히 혼탁하지만 오히려 투표권을 쥔 당원들은 분위기가 심상찮다. “이번에는 당원들에게 ‘오더’가 먹히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 한나라당도 이제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이뤄질 때가 됐다.

노석철 차장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