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숙 목사가 땀·눈물로 지은 프랑스 ‘예수님 마을’ 창립 7년
입력 2010-06-27 19:33
2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130여㎞ 떨어져 있는 마르세유 엉 보베지의 ‘예수님의 마을’. 마을지기 최현숙(72) 목사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세우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믿음으로 일군 예수님의 마을이 창립 7주년을 맞아 감사예배와 기념음악회를 연 것이다.
“7년 전 이곳은 프랑스의 전형적인 19세기 시골 모습 그대로였지요. 2100㎡(700여평)대지에 3층 주택, 마구간, 축사, 닭장, 창고, 방앗간, 다락방 등 허름하기 이를 데 없었어요.” 최 목사는 마구간을 성인 4명씩 사용할 수 있는 12개의 방으로, 축사를 카페와 식당으로, 창고와 방앗간을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배당으로, 다락방을 60명이 동시에 기도할 수 있는 기도실과 세미나실로 만들었다. 그는 “무일푼으로 시작된 예수님의 마을 곳곳에는 눈물과 땀이 배어 있다”면서 “18년간 프랑스에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고백했다.
“무역업체 사장으로 클레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행기 표와 돈 100만원을 손에 쥐고 파리에 도착했어요. 막내아들에게 2주 지나면 돌아갈 거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신묘막측해요. 기도에 전념케 하셨고 이 땅에서 그분의 뜻을 이루게 하셨죠.”
그는 처음엔 “유학생들의 영적 어머니가 되라”는 성령의 음성에 이끌려 ‘사랑의 전화’를 개설했다. 학생들을 위해 전화 상담을 해주고 직접 만나 기도해주면서 그들의 변화를 수없이 목격했다. 이어 만두집, 민박 사랑의집(로뎀의집) 등을 운영하면서 ‘파리의 밥퍼’ ‘파리의 김치 어머니’ 등으로 불렸다. 100명에 달하는 식사를 도맡아 준비하면서 손과 발이 부르트고 온몸이 쑤실 때가 많았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저의 작은 수고로 학생들이 외로움 속에서 울부짖지 않을 수 있다니 오히려 힘이 솟구쳤어요.”
그는 1997년에는 한인 성도 및 유학생들로 ‘사랑의 소리 선교단’을 조직했다. 지하철역, 양로원, 교도소, 병원, 미자립교회 등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했다. 선교단 초대 지휘자 김도준씨는 현재 명성교회 지휘자로, 3대 지휘자 소프라노 송미향씨는 목민교회 지휘자로, 6대 지휘자 테너 정욱(파리장로교회 집사)씨는 파리 국립오페라(일명 바스티유 오페라단) 합창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파리 프앙드주흐교회는 그의 헌신에 감동해 93년 그를 최초의 한인 선교사로 임명했다. 그는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전도사로 활동한 경험이 있던 터라 2007년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중앙총회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가 예수님의 마을을 조성하기까지엔 시행착오도 적잖았다. 한번은 파리 남쪽 한 집을 자신의 전 재산인 5000만원을 들여 계약했다가 잔금을 치르지 못해 계약금을 고스란히 날려버렸다.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을 쏟으며 하나님을 원망하다 깜박 잠이 든 그에게 천사들이 청아한 찬양으로 찾아왔다.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 차도 주가 즐겁게 하시리라. 아침 해같이 빛나는 마음으로 너 십자가 지고 가라….” 벌떡 일어나 찬송가를 펴니 513장이 눈에 들어왔다.
2004년 9월에는 임파선암 진단을 받아 5차례 항암주사를 맞고 20차례 방사선 치료를 받았던 그는 “어려움은 또 다른 기적의 시작”이라며 “예수님의 마을이 유럽 및 세계 각국의 유학생, 선교사들의 안식과 재충전 공간이자 유럽의 이슬람화를 막는 선교기지가 되기를 꿈꾼다”고 했다.
보베지(프랑스)=글·사진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