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기도회 참석한 제리 웨스트… 전사한 형의 신앙 찾아온 미국 농구 살아있는 전설
입력 2010-06-27 20:37
“와, 제리 웨스트가 왔네요!”
지난 22일 6·25전쟁 60주년 평화기도회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상황실. 한 청년이 기도회에 참석한 귀빈 명단을 보고는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누구냐는 질문에 청년은 “엄청나게 유명한 사람이에요”라며 빠르게 설명을 이어갔다. 미국프로농구(NBA) 로고에 들어 있으며, LA 레이커스 선수에서부터 감독, 단장까지 지낸 NBA의 전설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제리 웨스트(72). 그가 무슨 일로 기도회에 참석했을까.
25일 오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만난 웨스트씨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losing loving one)’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형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했다. “데이비드(David)!” 웨스트씨는 형의 이름을 말하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형 생각에 잠 못 이룰 때가 많다고 했다.
그는 이번에 풍산그룹 유진 회장의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비무장지대(DMZ)에도 가보고 평화기도회와 다음날 열린 조찬기도회에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참석했다. 형이 죽은 나라, 한국에 와보기는 처음이다.
그의 가족은 모두 크리스천이다. 형은 그 중에서도 가장 독실했다. “한국전쟁 파병이 결정됐을 때 어머니는 성경을 형에게 선물했지요. 형은 한국에 가는 도중 성경을 잃어버렸다가 가까스로 찾았답니다. 그 성경을 들고 참전한 지 일주일 만에 죽었습니다.”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겼던 성경이었다. 그 뒤로 웨스트씨의 가족은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토록 신실한 사람을 지켜주지 않으신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컸던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가족은 하나님께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웨스트씨 주변엔 늘 크리스천이 많았다. 그가 사는 마을 쉴연(Chelyan)의 이웃들은 누구나 하나님을 찬양했다. 학교 농구부에서도, 레이커스에 입단해서도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은 거의 크리스천이었다.
그 또한 영성에 대한 호기심을 어쩔 수 없었다. “영성에 관한 책은 닥치는 대로 읽은 것 같아요.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의 영혼에 관심이 가더군요.” 주일 방송 설교도 종종 듣고, 목회자 친구도 여럿 두고 있다. 자연스럽게 형의 죽음으로 인해 생겼던 원망도 사라졌다. 그는 ‘은혜의 하나님’을 강조했다. 탄광 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했던 그를 부자로, 키가 작아 벤치 신세였던 그를 위대한 농구선수로 만들어주신 것도 그분의 도움이었던 것이다.
웨스트씨에게 농구는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늘 주눅 들어 있던 그는 농구를 하면서 자존감을 회복해갔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엔 60개 대학에서 러브콜이 들어왔다. 대학 졸업반 시절(1960년)엔 로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레이커스 선수 시절엔 ‘미스터 클러치’로 불리며 33연승을 이끌어냈다. 선수뿐 아니라 감독, 스카우트, CEO로서 그에겐 늘 최고의 찬사가 따랐다.
하지만 이에 대한 그의 반응은 의외였다. “감사하지만 저는 평범(normal)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는 명예와 돈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했다. 대신 DMZ에서 만난 소녀들의 미소, 감독 시절 선수의 자녀들이 보내온 편지 등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행복에 더 큰 가치를 부여했다.
“저도 젊은 시절에는 성공하기 위해 살았습니다. 남들과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습니다. 하지만 제 나이쯤 되면 세상적인 성공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 알게 됩니다.”
그는 모교인 웨스트버지니아 대학에 형의 이름으로 학습관을 기증했고, 자신과 아내 카렌의 이름으로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다. 또 자선골프대회를 열어 소외계층을 돕고 있다. ‘NBA의 전설’ 제리 웨스트는 지금부터 자신의 인생을 나눔과 베풂에 걸겠다고 밝혔다.
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