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여자만 걸린다고? 남자들도 위험하다
입력 2010-06-27 18:00
50대 남성 이모씨는 언제부터인가 왼쪽 가슴 유두 부근에 멍울이 만져졌다. 갑작스레 생긴 멍울이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자 고민에 빠졌다. 유방외과 전문의를 만나야 하는데, 여성들 사이에 앉아 진료를 기다리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거북했다. 결국 아내 손을 잡고 어렵게 발걸음한 병원에서 받은 진단 결과는 유방암이었다. ‘남자가 유방암이라니?’ 믿기지 않은 현실이었다.
여성의 병으로만 알려진 유방암. 하지만 모든 유방암이 여성에게만 걸리는 것은 아니다. 서양의 경우 전체 유방암 환자의 1% 정도가 남성 유방암이다.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전체 유방암 환자의 0.5% 정도가 남성 유방암이다. 이처럼 유방암 자체가 남성에게 매우 드물기 때문에 환자든 의사든 의심을 잘 안 하게 된다. 하지만 남성 유방암에 대한 인식 부재와 창피함으로 인한 진료 기피로 여성보다 암의 위협에 더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지난해 발표된 한국중앙암등록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우리나라 유방암 환자 1만1639명 가운데 남성은 33명으로 남성의 암 가운데 20위를, 여성은 1만1606명으로 여성암 중 2위를 차지했다. 서울대병원 유방외과 한원식 교수는 “2008년까지 유방암등록사업 데이터에 등록된 남성 유방암 환자 273명을 분석한 결과 60대가 가장 많았고 50대, 70대, 40대 순으로 발병률이 높았다”면서 “40대 발병이 가장 많은 여성 유방암에 비해 평균 발병 연령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병기별로는 약 40% 정도가 3기 혹은 4기에 발견된다. 같은 병기에서 비교하면 생존율이나 치료 성적이 여성 유방암과 동일한 만큼 남성 유방암도 조기 검진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남성 유방암의 원인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남성에 있는 여성 호르몬과 남성 호르몬의 일정한 비율이 깨지면서 생기는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또 유방암 유전자인 ‘BRCA-2’의 돌연변이가 있거나 선천성 성염색체 이상인 ‘클라인펠터 증후군’인 남성이 유방암 위험이 높다는 보고가 있다. 이 밖에 간경화증, 알코올성 간염이 있거나 고환염, 잠복고환, 고환 외상 등 고환에 이상이 있는 사람, 가슴에 방사선 치료를 받은 사람들도 유방암 위험이 높다.
한 교수는 “또 비만인 남성이 정상 체중 남성에 비해 유방암 위험이 배 정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 ‘여유증(여성형 유방)’인 남성이 유방암 위험이 높은지는 아직 의견이 분분한 상태”라고 말했다. 여유증은 남성의 가슴이 지방 축척 또는 유선 조직의 발달로 여성의 가슴과 같이 커지거나 멍울이 만져지는 증상을 말한다.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남성 유방암은 증가 추세다. 2004년 암 전문지‘캔서(cancer)’에 실린 미국 텍사스대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미국 남성 유방암 발병이 10만명당 0.86명에서 1.08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노인 인구의 증가와 관련 있다. 대부분의 남성 유방암이 60대 이상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비만 인구 증가, 광범위한 농약 사용, 알코올 섭취 증가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국내에는 워낙 발병 숫자가 적기 때문에 ‘증가’라고 할만한 통계 자체가 없다.
남성 유방암 증상은 여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두 주위에 통증은 없으면서 단단한 멍울이 만져진다면 일단 유방암을 의심해 봐야 한다. 드물게 피가 섞인 분비물이 나온다 든지 외상이 없는데도 유두 부위에 궤양이 생길 때도 마찬가지. 유두와 유륜부에 습진이 생기거나 허물이 벗겨지는 것도 의심 증상이다.
남성에게는 이러한 자가 검진법이나 정기적인 유방 촬영이 권장되진 않는다. 다만, 여성에 비해 멍울이 쉽게 만져질 수 있기 때문에 증상을 느꼈을 때 빨리 병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강북삼성병원 유방내분비외과 박용래 교수는 “하지만 여성에 비해 지방 조직이 적은 남성이 무관심 속에 암을 늦게 발견하면 겨드랑이 림프절까지 전이돼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