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괴된 사나이’서 딸 유괴당한 아버지 연기한 김명민 “타인의 삶을 사는 것 자체가 고통”

입력 2010-06-25 18:36


김명민(38)은 연기를 잘하는 배우로 각인돼 있다. 하지만 그는 “연기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배역이 주어지면 어떻게 연기를 할까를 고민하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으로 사는 거죠.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거 자체가 고통이에요.”



드라마 ‘하얀 거탑’, ‘베토벤 바이러스’, 영화 ‘내 사랑 내 곁에’ 등 맡는 배역마다 기대한 것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이런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영화 ‘파괴된 사나이’로 돌아온 김명민을 최근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명민은 이 영화에서 잃어버린 딸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 주영수를 맡았다. 주영수는 복잡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의대에 갔다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된다. 아내와 딸을 두고 행복하게 살았지만 딸이 유괴를 당하면서 모든 것이 변한다. 끝내 딸을 찾지 못한 주영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져버리고 타락한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된다. 8년이 지난 후 한 통의 전화가 다시 그의 삶을 뒤흔든다. 유괴범은 딸을 여전히 데리고 있었다.

김명민은 “아버지로서 8년간 딸을 방치했다는 자책과 분노, 상실감 같은 걸 표현하는 게 정말 힘들었다. 주영수라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계속 생각했다”고 말했다.

모태신앙으로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주영수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딸을 잃고 노력했던 건 기도밖에 없는데 결국 딸을 못 찾았다면 하나님이 배신했다는 느낌이 나라도 들겠어요. 우리는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잖아요. ‘하나님이 나한테 왜 이러시나’라는 마음이 든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파괴된 사나이는 딸을 잃고 신앙을 잃으면서 끝자락 까지 떨어진 남자가 딸을 찾는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는다. 김명민은 “주영수는 시간이 지날 수록 딸을 잃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잠시 하나님을 잊고 세상 사람으로 살다가 결국 다시 한 가장, 아버지로 돌아가는데 여기에서 희망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영수는 다시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돌아가서 성경을 읽고 있을 것”이라고 영화 이후의 캐릭터 모습까지 그렸다.

어떤 역할이 하기 편한지 묻자 “무의미한 얘기”라는 답이 돌아왔다. “관객이 보기에 밝고 유쾌한 모습이라도 결국 제가 캐릭터에 접근하는 방식은 항상 같아요. 가볍건 무겁건 성격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그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은 똑같거든요.”

김명민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본질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인물의 본질이 시나리오에 들어가야 하고, 드라마에서 말하고자 하는 본질을 후벼 파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7월 1일 개봉. 18세 관람가.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