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화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고단한 삶… 김정남 첫 소설집 ‘숨결’
입력 2010-06-25 17:33
200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 김정남(40·오른쪽 사진)의 첫 소설집 ‘숨결’(북인)에는 좌표를 잃고 떠도는 ‘고단한 인생’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기계화되고 계량화된 현대 사회에 안착하지 못하고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거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부유하는 사람들이 주로 등장한다.
수록작 ‘야생 도시’는 사고차량을 견인해 생계를 이어가는 레커차 운전기사의 이야기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도로에서 사고 소식만 기다리는 주인공 ‘나’는 교통사고와 질긴 악연이 있다. 건어물 장사를 하던 어머니는 오토바이에 치여 죽고, 택시를 몰던 아버지는 사망 사고를 내고 다리 한 쪽을 못 쓰는 장애인이 돼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올라왔다.
‘나’는 레커차 운전기사가 남의 불행을 먹고 사는 직업이라 처음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다보니 점차 그 일에 익숙해 졌다. 그에게 사고 차량은 돈벌이가 되는 ‘먹잇감’일 뿐이다. 교통사고 소식을 알려 준 동료에게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줬다고 고마워할 정도로 남의 불행에 무덤덤해 졌다. 하지만 견인한 사고 차량 안에서 사는 게 고달파 가출했던 아내가 사체로 발견되는 순간, 교통사고는 그에게도 고통스런 현실로 다가온다.
표제작 ‘숨결’은 한 때 사대문 안의 극장 간판을 도맡아 그렸던 간판장이의 뒤틀린 삶을 다룬다. 극장 간판이 사진 포스터로 바뀌면서 일자리를 잃게 된 그는 아파트 외벽 칠 작업 등을 하며 떠돌다 급기야 미술품 위조에 가담하다 쫓기는 신세가 된다. 도피길에 나선 그는 ‘아! 드디어 나는 내 몸 하나 둘 곳 없는 존재로 완성된 것이다. 이게 내 인생이라는 그림의 화룡점정이다’라고 자조한다. 소설집에는 이밖에 신도시 건설 과정에서 집을 빼앗기고 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초등학교 5학년 민수의 시선으로 그려낸 ‘마추픽추’, 행방불명된 고교동창생의 행적을 더듬는 이야기인 ‘삼류극장’ 등 모두 9편의 단편이 실렸다.
문학평론가 정은경은 이 소설집에 대해 “작가가 주력하는 것은 부정성의 비극을 통한 근대 도시 생태학의 탐구인 바, 그것은 결국 콘크리트화된 현대적 삶에 ‘숨결’을 불어넣기로 요약할 수 있다”고 밝혔다.
라동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