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인종차별에 맞선 목자 스러지다… 흑인 거주지에 들어간 최초의 백인 니코 스미스 목사 별세
입력 2010-06-25 17:51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최초로 흑인 거주지에 들어가 살았던 백인, 니코 스미스 목사가 향년 81세로 숨졌다. 워싱턴포스트 등은 23일(현지시간)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에 맞서 싸워온 스미스 목사가 19일 남아공의 행정수도 프리토리아에서 친구 생일파티에 참석했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운명을 달리했다고 보도했다.
스미스 목사는 남아공에서는 흑인 인권 수호의 대명사로 통한다.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성명을 통해 “그는 자신의 안녕과 백인으로서의 특권을 버리고 용기 있게 싸운 투사였다. 그가 흑인 해방을 위해 투쟁한 세월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고인을 애도했다.
스미스 목사는 1963년 기독교 사상가인 카를 바르트를 만나 깨달음을 얻고 정부의 흑인 인권 탄압에 반하는 글을 지속적으로 기고했다. 바르트가 그에게 던진 질문은 “당신은 정부가 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을 성경에서 발견했을 때 그에 대해 설교할 정도로 자유로운가?”였다.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는 어느 날 흑인 주민으로부터 전보를 받았다. 자신들의 목사가 되어 달라는 간절한 요청이었다. 처음엔 백인 거주지에 머물면서 흑인 마을 교회로 매일 출퇴근하며 예배를 인도했다. 하지만 주민들과 더욱 가까워져야만 했다. 결국 그는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거주지로 들어가는 백인이 됐다.
그는 1988년 AP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백인 친구들은 나를 반역자 내지는 혁명가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단지 그들과 지내는 것이 더 이상 편치 않아 여기로 왔다”면서 “여러분도 찬양을 하면서 인종 분리를 생각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남아공 사회에 상당한 울림을 남겼다. 당시 흑인 거주지 30만명 주민 가운데 백인은 그와 아동심리학자인 그의 아내 엘렌이 유일했다.
스미스 목사는 이듬해 다시 백인 거주지로 돌아가 프리토리아에 흑인과 백인이 공존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면서 남아공 사회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스미스 목사의 장례식은 24일(현지시간) 남아공 정부 차원에서 열렸고, 다음날엔 그가 설교를 시작한 마멜로디에서 추도식이 진행됐다.
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