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손수호] 6월의 스칸디나비안 클럽

입력 2010-06-24 17:58


“한국전쟁 때 도움 준 北歐 3국의 우정 남은 곳… 전쟁 기억해야 전쟁이 없다”

은사는 고맙게도 종강하는 날 저녁을 샀다. 한 학기 동안 열심히 공부해 주어서 고맙다는 취지였다. 술을 하지 않는 그분의 인사법이었다. 장소는 을지로 국립의료원 내 스칸디나비안 클럽. 청어절임, 훈제연어 등이 나오는 바이킹 뷔페 음식점이었다. 하루는 왜 학교에서 먼 이곳을 택하셨냐고 여쭈었더니 세미나실이 있고 음식과 교통편도 그만이어서 학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하셨다.

그것으로는 설명이 불충분해 취재해 보니 6·25 전쟁의 흔적이 남아있는 유서 깊은 곳이었다. 전쟁 당시 의료지원부대를 파견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3국이 전쟁이 끝난 1958년 440만 달러를 들여 국립의료원을 건립하면서 구내식당을 둔 것이다. 내가 태어날 무렵에 생긴 식당이 건재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두타, 밀리오레 등 동대문 일대의 고층빌딩 숲 아래 납작 엎드린 분홍색 단층 건물 입구에는 북구 분위기가 풍기는 뷔르겔의 ‘농가의 결혼잔치’ 벽화가 있고 능소화, 목백일홍, 석류 등 여름 식물이 창문을 휘감는 중이다. 실내에는 스웨덴 적십자병원과 노르웨이 이동외과병원의 활약상을 담은 사진이 걸려 있다. 이역만리에 와서 야전병원을 운영하다가 전쟁이 끝난 후에도 15년간이나 남아 환자를 돌본 스칸디나비아 3국이 새삼 존경스러웠다.

서울도 전쟁 중에 상처를 많이 입은 곳이지만 스칸디나비안 클럽처럼 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현장이 많지 않다. 베를린 도심의 카이저빌헬름교회처럼 포탄 자국이 숭숭 나있는 건물이 없다. 서울은 전쟁의 상처를 없애버린 성형도시다. 그렇다고 전쟁마저 없앨 수는 없다. 하늘은 먹구름으로 어두운데도 땅은 더없이 평화롭고 풍요롭다. 46명의 군인이 죽어도 공사장에서 일어난 안전사고쯤으로 여긴다. 평화와 풍요를 누릴 뿐, 그것을 지키는 데는 몸을 사린다.

역사의식이 너무 빈약한 탓이다. 과거를 너무 쉽게 잊는다. 전쟁을 잊는 순간 전쟁이 찾아온다. 콜터 장군을 아는가. 초대 미8군 사령관 워커 장군은 같은 이름의 호텔로 인해 많이 알려졌지만 1950년 포항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뒤 유엔 한국재건단장으로 있으면서 초토화된 한국을 일으켜 세운 콜터는 잊혀진 인물이나 다름없다. 서울 어린이대공원 후문 쪽에 세워진 그의 동상 주변은 노숙인들의 오줌 냄새가 진동한다.

한국전쟁에 가담한 나라는 많다. 교과서에서 배운 참전 16개국에다 의료지원부대를 보낸 나라가 5개국이고 물자를 지원한 나라는 20개국에 이른다. 모두 41개국이 유엔 결의에 따라 한국을 돕고 나선 것이다. 이 가운데 이번 월드컵을 개최한 남아공, 우리와 자블라니를 다툰 그리스는 전투부대를 파병했다.

이들이 먼 나라 한국에서 설렁설렁 폼만 잡고 미국 눈치만 보다가 돌아갔을까. 전투비행대대를 보낸 남아공은 34명의 전사자를 냈다. 하루에 36회 출격기록을 세우며 청천강 상공에서 북한 미그기와 공중전을 벌였다. 그리스는 보병부대와 공군 수송편대를 보내 188명이 숨지고 469명이 부상했다. 주로 철원지역에서 중공군과 맞붙었으며 수송기 추락으로 14명이 한꺼번에 죽는 참화를 겪기도 했다. 월드컵에서 그리스 팀을 보면서 이 땅에 젊은 피를 뿌린 우방국임을 인식했는지 모를 일이다.

한국전쟁 60년을 맞아 참전국을 제대로 기념한다고 여겨진 곳이 롯데백화점이다. 참전국에 감사하는 쪽지광고를 이어오다가 에티오피아 지원을 결정했다. 백화점의 생각은 이렇다. “3518명의 군인을 보내 121명이 전사했다. 참전 군인 중 생존한 1000여명은 빈민층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왕실 근위병 소속이었다. 이 중 가장 어려운 에티오피아 교육 지원에 나설 것이다.” 6·25를 제대로 기억하는 기업이다.

현직 대통령이 44년 만에 유엔묘지를 방문했대서 화제가 됐다. 6·25 현장은 무덤이나 동상, 휴전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의 터전 곳곳에 전쟁의 상흔이 스며 있다. 일상 속에서 6·25의 비극을 기억할 때 전쟁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