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마녀사냥과 고문
입력 2010-06-24 17:58
“여성은 천성이 좋지 않다. 쉽게 유혹에 넘어간다. 쉽게 의심하고, 믿음도 쉽게 부인한다. 이것이 바로 마술을 하기 위한 기본 소양이다.”
1487년 독일에서 발간된 ‘마녀철퇴’의 한 부분이다. 편견으로 가득 찬 황당무계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를 토대로 유럽에서 대대적인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마녀를 발본색원하라는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의 명령도 떨어졌다. 200여년간 수백만명이 약식 재판을 거쳐 화형 또는 참수형, 교수형을 당했다. 희생자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과부를 비롯해 혼자 사는 여성들이 주 타깃이 됐다.
세상에 마녀가 어디에 있는가. 하지만 중세인들은 마녀의 존재를 확신했다. 마녀들에게는 악마 집회에 참석했다거나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녔다거나 폭풍을 불러왔다는 등의 황당무계한 죄목이 적용됐다.
이런 일을 가능케 한 것이 가혹한 고문이다. 고문은 합법적으로 이뤄졌다. 불로 발바닥 지지기, 손을 뒤로 묶어 공중에 매달았다가 바닥에 내동댕이치기, 관절 뽑기, 채찍으로 때리기 등을 견뎌낼 여성은 없었다. 물을 이용해 마녀인지 아닌지를 증명하는 방법도 있었다. 마녀로 지목된 여성을 무거운 바위에 매달아 강에 던져 떠오르면 악마와 접촉한 것이고, 가라앉으면 죄가 없는 것이다. 마녀라고 의심받는 순간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문이 군사정권 시절의 유산쯤으로 여겨졌으나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닌 모양이다. 서울시내 한 경찰서 경찰관 4명이 고문한 혐의로 최근 구속됐다. 다른 경찰서에서 고문당했다는 진정이 추가로 접수돼 국가인권위원회가 확인 중이라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 “어떤 이유로든 수사과정에서 고문은 용납할 수 없다”며 엄벌을 지시했다. 창피한 노릇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우리 정부의 조사 결과에 의문이 많다는 내용의 서한을 유엔에 보낸 참여연대에 비난이 쏟아지자 좌파성향의 시민단체들이 마녀사냥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냈다. 마녀사냥이라니, 중세를 떠올리면 끔찍한 욕이다. 참여연대의 행동이 비난받을 만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 참여연대가 북한 김정일 정권을 두둔하는 듯한 입장을 보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김정일 정권은 지금도 고문을 자행하며 정치범들을 마녀사냥하고 있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