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度 넘은 뒤풀이 월드컵 분위기 망친다
입력 2010-06-24 17:53
서울광장에서 한라까지, 우리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전국 곳곳을 붉게 물들이는 12번째 태극전사들의 대규모 거리 응원은 한국 축구를 세계에 알리는 대표적 아이콘이다. 축구에 죽고, 축구에 산다는 유럽에서도 볼 수 없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독특한 응원문화다. 외국인들은 수많은 인파에 한 번 놀라고, 거대한 빙산마저 단박에 녹여버릴 열정에 또 한 번 감탄한다고 한다.
더 놀라운 일은 응원이 끝난 뒤 일어난다. 수천∼수만 명이 모여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던 길거리 응원 장소가 순식간에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기적이 펼쳐진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발적으로 주변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줍는다.
서울시에 따르면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결정지은 한국 대 나이지리아전이 열린 지난 23일 서울광장과 영동대로 등 시내 거리 응원 장소에서 수거한 쓰레기는 135t에 이른다. 서대문구 하루 생활폐기물 배출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서울시가 이 쓰레기를 모두 치우는 데 걸린 시간은 한두 시간이면 충분했다. 시민들의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던가.
옥에도 티가 있기 마련이다. 몰지각한 일부 시민들의 도 넘은 응원 뒤풀이가 그렇다. 도로를 가로막고 차를 마구 흔들어대거나 차 위에 올라가 발을 구르는 것은 약과다. 달리는 버스에 매달리거나 자동차 전용도로인 올림픽대로를 무단 횡단하는 위험천만한 경우도 있었다.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실제로 대학생 1명이 한강에 뛰어들었다 익사하는 안타까운 인명사고도 있었다.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벌이는 이 같은 난장(亂場)은 남에게 피해를 줄 뿐 아니라 월드컵 분위기까지 반감시킨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태극전사들은 26일 밤 8강 진출을 위해 우루과이와 일전을 벌인다. 이날 국격에 걸맞은 선진화된 시민의식을 발휘하고 성숙된 응원문화를 보여줘 경기에서도 이기고, 응원에서도 승리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