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용의 공간 너머] 신앙 이념 지식 기분
입력 2010-06-24 18:27
요즘 TV 드라마 주인공으로 재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는 숙종은 22세 되던 해 초겨울 두창(천연두)에 걸렸다. 재위 9년째의 일이다. 아들 사랑이 지극했던 모후는 자신에게 병을 옮겨달라고 하늘에 빌었다. 날이 추웠건만 기도에 앞서 목욕재계하는 일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 정성이 하늘에 닿았던지 숙종은 한 달 가까이 앓다 나았으나 대신 대비가 병들어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흔히 옛 사람들은 목욕을 거의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들 하지만, 이는 근대가 부여한 허상(虛像)이다. 설과 추석, 1년에 두 차례만 목욕한다는 농반진반의 말은, 도시화가 진전되고 동네 우물이 사라진 뒤에도 그 사라진 우물을 주택 구조와 수도 설비가 대체하지 못했던 시절의 얘기일 뿐이다. 1910년대 한국을 찾았던 한 외국인은 한국인이 목욕을 자주하는 편이라고 증언했다.
그렇다고 옛 사람들이 현대인처럼 위생과 건강을 위해서만 목욕한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 목욕은 종교의례의 일부였다. 부정(不淨)한 몸으로 신 앞에 나설 수는 없었다. 기도하기 전에는 먼저 몸을 깨끗이 하고 잡생각을 지워야 했다. 그래서 목욕이라는 단어 뒤에는 ‘깨끗이 하는 계율’이라는 뜻의 ‘재계(齋戒)’가 늘 따라다녔다.
옛날에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일이 너무 많았고, 그런 일은 모두 ‘신의 영역’이거나 ‘귀신의 소관’으로 취급됐다. 그런 만큼 신을 찾아야 할 일도 많았다. 가족이 아플 때, 남편이 과거시험 보러 갈 때, 송사(訟事)에 휘말렸을 때, 메뚜기떼가 농사를 망쳐 놓을 때, 심지어는 다른 사람을 저주할 때조차도 먼저 목욕을 해야 했다. 일상에서 이런 경우는 한 해 열 번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인간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합리적 이성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 것은 17세기 ‘과학혁명’ 이후의 일이다. 그 후 사람들은 자신과 타인의 행위 및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이성으로 재해석했다. 신과 관련돼 있던 행위가 인간 자신의 직접적 필요에 따른 행위로 급속히 재구성됐고, 계율 대신 지식이 사람의 의식과 행동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현대인은 무엇을 얼마나 먹을 것인지, 언제 자고 일어날 것인지, 어떤 자동차를 살 것인지, 언제 이사를 할 것인지, 어떤 주식을 언제 사고 팔 것인지, 누구에게 돈을 빌려줄 것인지 말 것인지 등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을 의학, 법학, 경제학, 물리학, 공학 같은 ‘지식’에 의존해 결정한다. 지식이 새로운 신이 된 셈이다.
지식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지식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체계화한 ‘이념’의 비중이 커졌다. 이교도에게 향하던 화살이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19세기 말 이래 이념 대결과 내전의 와중에 죽은 사람의 수는 국가 간 전쟁의 희생자에 버금간다. 그런데 이념은 개별 사건과 사물에 대한 지식들을 묶어주었지만, 지식이 세분되고 깊어지자 오히려 지식의 자유로운 발전을 억압하게 됐다. 최근 탈이념화 경향이 세계적 추세가 된 것은 지식이 이념의 질곡을 뛰어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신앙심이나 이념, 지식 외에 사람의 행위를 지배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 기분이 있다. 앞의 것들이 서로 어울려 습관적 행위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기분은 보통 순간적으로나마 일상의 리듬을 깨뜨리는 구실을 하며 가끔은 신념과 이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유발하기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출근하기 싫어지고, 공연히 다른 사람에게 짜증을 부리며, 느닷없이 별 쓸모도 없는 물건이 사고 싶어지는 이유를 이념과 지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터이다.
기분은 건강 상태나 사회적 관계의 변화에 좌우되기도 하지만 날씨와 같은 자연 조건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1987년 6월 10일에 비가 쏟아졌다면 ‘6·10 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근대사회는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죄악시했지만 최근에는 단조로운 일상을 일순간이나마 변화시키는 긍정적 요소로 취급하는 태도가 확산되고 있다.
이제 목욕을 종교의례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먹고 자고 일하고 쉬는 일상의 영역에서 이념이 차지하는 비중도 미미해졌다. 신념이나 이념보다는 지식과 기분이 차지하는 자리가 훨씬 넓어졌다. 그럼에도 근래 한국 사회에서는 이념 문제가 새삼 심각하게 불거지고 있다. 정작 자기 이념이 무엇인지 생각도 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념을 선택하고 고백하라고 강요하는 형국이다. 오늘날 이념 과잉은 지식 부족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사람들이 정확히 판단하는 데 필요한 것은 정보와 지식이지 이념이 아니다.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