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의 수다] 아줌마 운동

입력 2010-06-24 18:21


올 신년계획 중 하나는 운동하기였다. 결심은 반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잘 지키고 있다. 요가도 꾸준히 해왔고 서울 청계천에서 조깅도 했다. 요즘은 청계천에 설치된 운동기구를 애용한다. 어느 날 보니 운동기구를 이용하는 사람이 나 말고는 모두 60세 이상인 것 같았다. 운동 나온 어르신들도 이상하다는 듯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이런, 또 뭔가 실수를 저질렀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15세 미만만 어린이 놀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 한국인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나이 제한 같은 건 없다고 했다. 그러고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건 아줌마 운동이야! 젊은 사람들은 그런 거 안 해!”

참 이상했다. 왜 한국에서는 나이에 따라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경계가 그렇게 분명한지, 그 규범의 경계를 넘으면 왜 체면이 깎이고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인지.

큰고모는 아흔이 넘었지만 유행에 따라 옷을 입는다. 새로 나온 화장품에도 관심이 많다. 독일 베를린에서 다니던 직장의 여자 상사는 나이 마흔이 넘었지만 ‘헬로키티’ 가방에 열광했다.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학 동기 중에는 뒤늦게 역사학과에 진학한 칠십 넘은 늦깎이 여학생이 둘이나 있었다. 스위스 출신 친구 넬레는 벌써 쉰 살이 다 돼 가지만 여름마다 배낭을 메고 세계 각지로 여행을 떠난다.

나만 해도 십대 때 흑백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노인을 위한 영화 상영관을 찾곤 했다. 베를린에서 알고 지낸 사람 중에 중고가게를 운영하는 젊은 여주인이 있었는데 자기 할머니의 옛날 옷장에서 찾아낸 자그마한 모자와 꽃무늬 원피스들로 현대적인 느낌의 코디를 하곤 했다.

한번은 한국 친구와 대화하다가 넬레 이야기가 나왔는데 스무 살도 더 나이가 많은 이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느냐며 의아해했다. 그 친구 말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젊은이와 나이 든 사람들이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따로 살아가는 한국의 모습은 왠지 슬프다. 비슷한 나이, 학력, 사회 배경을 가진 사람끼리 친구하기가 훨씬 쉽다. 서로의 공통점을 기반으로 비슷한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슷한 사람끼리만 어울린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을 것이다.

‘Change the world for a fiver’라는 책을 보면 세상을 바꾸는 50가지 아이디어가 나온다. 그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다른 세대의 사람과 친구하라.” 다른 나이대의 친구는 삶을 풍성하게 한다. 서로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나이 어린 친구는 휴대전화 문자 보내기나 인터넷 서핑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고, 나이 많은 친구는 인생 경험에서 얻은 삶의 지혜를 들려줄 수 있다.

나는 아줌마 운동을 계속 할 것이고, 그것 때문에 창피해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운동 나온 어르신들도 언젠가는 내 모습에 익숙해질 것이다. 그러면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는 일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글쓴이 베라 호흘라이터는

1979년 독일 하일브론 출생. 베를린 자유대학과 파리 소르본대학 졸업. 2006년부터 서울 거주. KBS TV ‘미녀들의 수다’ 출연. tbs eFM 뉴스캐스터. 저서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번역한 김진아는

전문 번역가. 베를린 자유대학 연극학 및 교육학 석사.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노년의 기술’ 등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