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우드 교수 "초기 선교사 지나치게 신성시 말아달라" 당부

입력 2010-06-24 16:54


[미션라이프] “한국교회가 성장한 이유가 증조부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을 너무 자주 들어왔습니다. 얼마나 오만하고 주제넘습니까. 하나님이 한국에서 일하셨고 주님은 나의 증조부모가 그 사역의 일부가 되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한국에 왔던 외국 선교사들을 신화화 하는 것은 말씀의 핵심을 놓친 것입니다.”

호러스 언더우드의 4대 손녀인 엘리자베스 언더우드(49·사진) 미국 이스턴켄터키대(사회학) 교수가 초기 선교사 개인에 대한 지나친 부각은 신앙의 본질이 아니라고 직언했다.

이 말은 최근 한국교회가 해외선교의 질적 개선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은 반면, 초기 외국인 선교사들에 대한 ‘기념비 세우기’에는 힘을 쓰는 상황에서 나온 뼈아픈 충고다. 더욱이 발언 당사자가 한국교회 역사에 획을 그었던 선교사의 직계손이란 점에서 반향은 크다.

언더우드 교수는 23일 서울 광장동 장로회신학대(총장 장영일)에서 열린 에든버러세계선교사대회 100주년 기념 ‘2010 한국대회’ 주제 강연에서 증조모 릴리어스 호튼 언더우드에게서 얻은 교훈을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증조모는 자신이 다른 기독교인보다 더 거룩하다는 생각으로 한국에 왔다. 그러나 고향에서와 같이 자신이 동일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놀랐다. 특히 천국엔 백인들만 있다고 생각했으나 아들이 한국인 친구와 함께 있는 것을 보면서 ‘백인들의 천국’ 환상은 깨졌다.

언더우드 교수는 “증조모 릴리어스의 연약함과 19세기 문화가 내포한 죄악을 담은 릴리어스의 고백을 읽으며 선조의 실패와 죄에 대해 깨달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바라볼 대상은 선교사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고 고백했다.

한국인들이 가졌던 신앙의 우수성에 대해서도 말했다. 대부분 선교사들은 한국 기독교인의 특징을 보며 감탄했는데 미국 기독교와는 달리 실천에 강했다.

“서구 선교사들은 한국인들의 새벽기도와 산(山)기도를 비롯해 개인전도, 재정적 지원, 십일조 형태의 ‘날 연보’, 성경 공부 열심 등에서 미국인보다 뛰어났다고 기록했습니다.”

이 같은 감탄은 서구 선교사들이 한국인들의 신앙을 배우는 계기도 됐다. 그는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한국이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느꼈다”며 “상당수 선교사들이 한국인과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북부의 경이적 현상에서 나타나듯 기독교 메시지에 대한 한국인들의 응답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언더우드 교수는 릴리어스로부터 얻은 교훈으로 가족 안에 전해 내려오는 ‘복음 전하는 이야기’를 소개했다. 릴리어스는 1886년 한국에 도착해 한국의 왕비를 돌보던 의사였다. 몇 년 후 자신보다 8세 연하인 호러스 언더우드와 결혼했다. 얼마 후 콜레라 전염병이 발생해 온 나라를 휩쓸었는데 릴리어스는 서울의 진흙탕 길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도움을 주고 있었다. 한국인들이 죽어가는 것을 볼 때 그녀 마음은 슬픔과 절망으로 찢어졌다.

특히 그녀가 돌봤던 한 거지가 품 안에서 죽었을 때는 더욱 그랬다. 릴리어스는 슬픔을 가누지 못해 죽은 거지의 머리를 안고 울면서 앉아 있었다. 그런데 지나가는 한 사람이 외국 여자가 진흙탕 길에서 부랑자를 안고 우는 모습을 보고 기이히 여겼다.

알고 보니 외국 여자는 해외에서 온 새로운 종교의 선생과 결혼을 했고, 왕비의 주치의였다. 높은 직함 때문에 충격을 입은 그는 감동해 즉시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들였고 그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의 고향은 경기도 행주로 많은 술집과 성매매 업소가 있는 거친 마을이었다. 이 회심자는 성경도 찬송가도 없이 훈련을 받지 않았지만 열정을 가지고 홀로 성령의 능력으로 마을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다.

기적은 거기서 일어났다. 복음으로 굴복된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빼앗은 가축을 돌려주었고 거래할 때 속이는 것을 그만두었고 심지어 납치한 부녀자와 아이들까지 집으로 돌려보내며 용서를 구했다.

이야기는 나중에 언더우드에게 전해져 그가 행주에 가서야 이 같은 기적이 아내가 보여준 긍휼과 사랑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언더우드가(家)는 4대째 행주에서 성장하는 교회와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한 여인의 울음 때문에 그 교회는 여전히 주님을 섬기고 있다. 릴리어스는 자신이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지만 진정한 복음 전도자였다는 사실을 몰랐다.

엘리자베스 언더우드 교수는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나 79년 도미했다. 그랜드밸리주립대를 거쳐 일리노이즈대(M.A.,Ph.D.)에서 사회학을 공부했다. ‘선교사 정체성과 동일시: 한국의 북미 선교사들’ 이란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세기 전환기의 한국 선교사 과제’, ‘도전 받는 선교사의 정체성’ 등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언더우드 교수는 3세 원득한(Richard Fredrik Underwood)씨의 딸로, 원씨는 지난 2004년 양화진에 묻힌 원일한 박사의 넷째 동생이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