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삶의 진정한 주인공입니다
입력 2010-06-24 17:36
세상에 말을 건네다, 붉은 소파/호르스트 바커바르트/중앙북스
1979년 뉴욕의 소호거리. 한 조각가의 작업실에 있던 붉은 소파가 호르스트 바커바르트(60)라는 젊은 사진작가의 눈에 띄었다. 그는 곧 버려질 소파를 소호거리 한 복판에 있는 백화점 앞으로 옮기고 지나가던 사람을 앉혀 사진을 찍었다.
96년 그는 무거운 이 소파와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난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의자에 앉히고 삶에 대한 질문을 했다. 여행의 목적은 사람들을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바커바르트는 “지구촌 모든 이들의 독특한 존재성과 완전한 평등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바커바르트가 소파를 작업의 주제로 정한 것은 순전히 장난이었다. 하지만 작업을 진행할수록 붉은 소파가 세상을 이해하는 다른 접근방식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소파를 통해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생활하는 공간이 정말 원하는 것이 뭔지에 대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던진 질문은 ‘당신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 ‘당신의 가장 큰 바람은 무엇인가’ 같은 평범한 질문이다. 소파에 앉았던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배경은 다 달랐지만 그들의 답은 모두 진실했다.
책을 펼치면 각자의 공간에 놓인 소파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소파에 앉은 표정은 편안하기도 하고 삶의 때가 묻어있기도 하다. 저마다 살아온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다.
영화 ‘쿼바디스’에서 네로 황제 역으로 유명해진 영국의 배우 겸 작가 피터 유스티노프는 행복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행복이란 마음속 지평선에 펼쳐진 이상향이 아닐까요. 절대적인 행복에 실제로 다다를 수 없지만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런 동경 속에서 결국 작은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나는 아주 행복한 사람이지만 언제나 행복하다는 의미는 아니죠.”
침팬지 연구가인 제인 구달은 “야생 어미 침팬지가 새끼와 내가 접촉하는 것을 처음으로 허락했을 때 커다란 행복을 느꼈다”고 행복을 느낀 순간을 회고했다. 구달은 “동물을 우리 일상에 끌어들이는 것만으로도 그들과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이해할 수 있겠지요. 동물과 우정도 인간 사이의 우정처럼 의미 있을 수 있고, 어쩌면 더 큰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라고 덧붙였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 소련 대통령은 1998년 당시 건축 중이 페레스트로이카 박물관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최대의 행복은 살아있다는 것, 남에게 이해받는 것, 남에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필요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여성들과 아이들을, 조국, 그리고 이 지구를 사랑하세요. 이런 일들을 이미 실천하고 있다면 사람들이 당신에게 감사할 뭔가를 더 행하세요”라고 말했다.
사망하기 1년 전인 98년 쓰레기 처리장에서 사진을 찍은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은 “인간이 자신의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게 되길 바란다”는 조언을 남겼다.
책은 그가 유럽을 다니며 사진과 인터뷰를 한 내용을 담은 것과 미국 내에서 촬영한 부분으로 나뉜다. 미국 내 촬영은 1983년 케빈 클라크와 함께 한 것으로 붉은 소파와 카메라를 소형 버스에 싣고 25만 마일을 여행하며 찍었다. 바커바르트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 강자와 약자, 아름다운 사람과 못생긴 사람, 유명한 사람과 알려지지 않은 사람을 동시에 담아 미국 사회의 이면을 보여준다. 휴 헤프너 플레이보이지 발행인이 모델들과 붉은 소파에 앉아있는 사진이나 애플 창업주이자 아이폰으로 모바일 세상의 혁신을 불러온 스티븐 잡스의 84년 당시 앳된 모습도 볼 수 있다(중앙북스·1만9800원).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