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상잔의 전쟁터 노래도 목놓아 울었다

입력 2010-06-24 19:23


‘한국전쟁과 대중가요, 기록과 증언’ 박성서/책이있는풍경

“9·28 수복이 돼서 서울에 올라와 집사람 얘기를 들어보니 5살짜리 어린 딸 수라를 업고 화약이 터지는 미아리 고개를 넘던 중 어린 수라가 영양실조로 눈을 감았다는 거야. 어떡해, 애가 죽었으니 이불에 싸가지고 호미로 땅을 파 묻었는데 깊이 묻지도 못했겠지. 그 얘기를 아내에게 듣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만든 노래가 ‘단장의 미야리 고개’야. 6·25로 인해 어린 수라를 노래 하나와 바꾼 셈이지. 해마다 6·25만 되면 꼭 이 노래가 방송에서 나오곤 하는데 들을 때마다 심장이 찢어져요.”

진방남이란 이름으로 ‘불효자는 웁니다’ 등의 노래를 부른 원로 가수 겸 작사가 반야월(93)이 전쟁의 아픔을 생생하게 고발한 ‘단장의 미아리 고개’의 노랫말이 나오게 된 배경을 설명한 대목이다.

‘홍콩아가씨’ ‘남국의 처녀’ 등을 부른 금사향(81)은 한국전쟁 때 전선으로 위문공연을 다녔던 일을 회고했다. “국방부 정훈국에 소속되어 제주도 육군 제1훈련소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당시 박시춘, 유호, 신카나리아, 남인수, 김봉명 선생, 또 아수동, 구봉서 등이 있었어요.(중략) 북방 한계선인 209GP까지 위문을 다녔어요. 이 나라에 태어났기 때문에 다들 생명으로 보국하는데 저는 노래로서 보답한 거죠.”

잡지사 기자 출신인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54)씨가 펴낸 ‘한국전쟁과 대중가요, 기록과 증언’은 한국전쟁 당시 활발하게 활동했던 가요계의 원로 10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전쟁을 어떻게 거쳐 왔는지를 되돌아 본다. 또 전쟁 시기와 이후에 전쟁이 가요계에 끼친 영향을 당시 발표된 대중가요들을 통해 살핀다.

‘바닷가에서’ ‘사랑이 메아리칠 때’를 부른 안다성(79)은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육군 정훈국 군예대에 지원해 2년 9개월 동안 100여차례 동부전선에서 위문 공연을 다닌 사연을 털어놓았다. “공연하는 시간만큼은 모두들 즐거워했어요.(중략) 전쟁하다 말고 온 군인들은 잠시 후면 다시 전투를 위해 고지에 올라야 하는데 쉽게 흥이 나겠어요? 그러나 그럴수록 모두 일심동체가 돼 흥을 북돋우고 박수 쳐주고, 노래와 격려로 한마음이 되는, 알고 보면 눈물 나는 공연이었던 셈이죠.”

‘한 많은 대동강’ ‘비나리는 호남선’의 가수 손인호(84)는 무명이던 시절 7사단 군예대원으로 참전해 “총알이 옆으로 팽팽, 하고 스치는” 전장을 누비며 공연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으로 시작되는 대표적인 전쟁 가요 ‘전선야곡’을 부른 신세영(85)은 1·4후퇴 때 정훈국 공작대원으로 7사단에 배치돼 전장을 누볐다.

“작전하는 군인들을 따라 최전방인 덕천까지 올라갔다가 중공군에게 포위되어 이틀 만에 탈출하는 등 죽을 고비도 참으로 많이 넘겼죠. 당시 위문공연 시에는 군인들이 다른 노래는 안된다며 가는 곳마다 ‘전선야곡’을 요청했어요.”

가수들은 총 대신 마이크를 들고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전장으로 달려가 장병들을 위문하고 그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것이다.

저자는 가요계 원로들의 생생한 증언과 함께 당시 가요계를 엿볼 수 있는 희귀한 시각자료들을 풍부하게 소개한다.

한국전 당시 전의와 용기를 북돋우거나, 피난살이의 고달픔 등을 노래한 대중가요가 담긴 SP음반(측음기음반)과 LP음반, 참전연예인단들의 위문공연 활동을 담은 사진 자료, 각종 공연 포스터와 전단지 등이 가득하다. 저자가 오랫동안 발품을 팔아 수집한 것들이다.

‘피난일기’ ‘굳세어라 금순아’ ‘아내의 노래’ ‘상이군인가’ 등 전쟁 시기에 불려졌던 대중가요에는 한국전쟁의 극한 상황을 헤쳐온 전쟁세대들의 아픔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저자는 또 전시수도였고 당시 우리나라 음악의 산실이었던 부산과 피난 연예인들의 사랑방이었던 대구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펼쳐진 전쟁 시기 우리의 대중가요사를 조명했다. 시대별 악보집과 연대표(1885∼1959)도 수록해 한국 가요의 변천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서문에서 “대중가요는 시대상과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시대의 산물”이라며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는 우리 가요 속에도 선명히 남아있다. (중략) 이 땅에 두 번 다시 이러한 아픈 노래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