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8강] 뺏기고 뺏고 ‘피말린 90분’… 하늘은 우리 편이었다

입력 2010-06-23 21:37

한국의 16강 진출은 숨가쁜 드라마였다. 전후반 90분 동안 죽다 살아났고, 결국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행 ‘해피엔딩’을 만들어냈다.

시작은 좋지 않았다. 한국은 전반 12분 나이지리아 우체에게 선제골을 허용했다. 스코어 0-1. 나이지리아에 한 골 차로라도 지면 무조건 탈락하는 한국은 생각보다 빨리 선제골을 허용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이지리아는 전반 35분 선제골을 넣은 우체의 중거리슛이 한국 오른쪽 골포스트를 맞고 나와 추가골 기회를 놓쳤다. 들어갔더라면 한국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늘이 도왔을까. 3분 뒤 한국의 동점골이 터졌다. 기성용이 나이지리아 진영 오른쪽에서 올린 크로스를 수비수 이정수가 득점으로 연결했다. 그리스전 선제골 주인공인 이정수의 남아공 2호골.

이정수의 동점골이 터진 뒤 분위기는 한국 쪽으로 기울었다. 이때부터 태극전사들의 움직임과 패스 연결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한국은 나이지리아 골문을 계속 두드렸지만 더 이상 추가골 없이 전반전을 1-1로 마쳤다.

코칭스태프는 하프타임 때 라커룸에서 “(같은 시간 열리고 있는) 아르헨티나-그리스전 전반전도 0-0으로 끝났다”고 선수들에게 알려줬다. 한국은 무승부만 계속 유지해도 16강에 오르는 유리한 고지에서 후반전을 시작했다.

후반전이 시작되기 전 태극전사들이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모였다. 최고참급 이영표가 선수들을 독려했다. 선수들 얼굴에 비장감이 서렸다.

후반 4분 박주영의 역전골이 터졌다. 박주영이 상대 왼쪽 페널티 지역에서 오른발로 감아찬 프리킥이 왼쪽으로 휘면서 나이지리아 오른쪽 골문을 뚫었다. 역전골에 500여명 정도 되는 경기장 내 한국 응원단은 ‘난리’가 났다.

후반 21분 나이지리아 스트라이커 야쿠부가 방향만 정확히 맞추면 들어가는 완벽한 골찬스를 놓쳤다. 한국에 운이 따라주는 듯했다.

그러나 16강행은 쉽지 않았다. 3분 뒤인 후반 24분 교체 투입된 김남일이 페널티킥을 허용했다. 나이지리아 야쿠부가 페널티킥을 차분히 성공시켜 스코어는 다시 2-2 동점. 아르헨티나-그리스전도 득점 없이 0-0으로 진행되고 있어 한국이 여전히 유리한 국면이었다. 10분여 뒤 나이지리아가 기뻐할 소식이 들렸다. 아르헨티나가 후반 32분 데미첼리스의 골로 1-0으로 앞서나갔다.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반드시 이겨줘야 하는 나이지리아 선수들이 다시 힘을 냈다.

하지만 나이지리아는 후반 35분 마틴스의 완벽한 득점 찬스가 무산됐고, 한국은 최대한 실점을 막는 버티기 작전에 돌입했다. 후반 45분 나이지리아 오빈나의 마지막 중거리슛이 벗어나면서 한국의 16강행은 확정됐다.

허정무 감독과 코칭스태프, 벤치에 대기하던 태극전사들은 모두 그라운드로 뛰어 들어가 서로 얼싸안았다. 눈물을 보이는 태극전사도 있었다.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2대 0으로 꺾었지만 한국을 이기지 못해 탈락한 나이지리아 선수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더반=이용훈 기자 cool@kmib.co.kr